[인터뷰 In & Out] 경희대의 ‘교양대학 실험’ 도정일 명예교수 기사의 사진

취업전쟁 시대에 우리가 교양을 택한 이유

최근 경희대는 교양강좌를 전담하는 교양대학 ‘후마니타스 칼리지(Humanitas College)’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설립 목표는 교양교육 강화라고 했다. 그리고 “교양은 대학이 지향할 궁극적 가치, 교육의 최종 효과”라고 선언했다.

대학에 거는 기대의 시작도, 끝도 취업인 시대다. 경희대는 취업률을 높일 직업교육 대신 교양을 선택했다. 남들과는 정반대 길이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설립위원장인 도정일(69) 경희대 명예교수를 2일 경기 분당 자택에서 만났다.

21세기엔 교양인이 필요해!

교양이란 말은 오해를 몰고 다닌다. 있으면 좋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지적 액세서리. 장식적이고 비실용적인 지식. 혹은 셰익스피어를 읽는 공대생과 베토벤을 좋아하는 이과생. 교양은 그런 것일까. 도정일 교수는 교양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사람들은 교양을 백화점 문화센터의 꽃꽂이 강좌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나 미술, 문학에 대해 아는 체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럴듯한 지식. 심지어 교수들도 그럴 정도니. 교양강좌 같은 거, 들어서 나쁠 거야 없지만 까짓 안 들어도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그래요.”

도 교수는 교양은 단순지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걸치고 있으면 우아해 보이는 장식도 아니다. 교양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어떤 전공과 직업을 갖든 평생 남아 ‘나’를 지탱하는 지적 기초체력이자 자산이다. “써주기로 하고 마무리 못한 책이 스무 권쯤 된다”는 도 교수가 지난 1년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매달린 이유는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로 들었다. 자본의 기능은 생산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월가 금융자본은 생산이 아니라 이윤에 따라 움직였다. 자본기능이 왜곡된 건데, 세계 최고의 두뇌가 모였다는 월가에서 ‘그래도 되는 걸까’ 의심한 이가 없었다.

“인재들이 모여 이 상품의 수익이 얼마일까만 따진 거죠. 자본의 기능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해볼 생각조차 안 했어요. 그게 실패의 근본원인이에요. 위기 후 미국 경영대학들은 심각한 자기반성에 들어갔어요. 결론은 교양교육 강화였습니다.”

도 교수는 ‘교양교육은 전공을 위한 예비교육’이라는 오해와도 싸우고 있다. 교양교육은 초보자용 전공 개론수업이 아니다. 교양은 전공의 경계를 넘어서는 통섭의 영역이다. 쪼개 놓은 지식을 넘나들며 인간 및 세계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사고력, 시민의식을 키우는 게 교양교육이다. 도 교수의 지론에 따르자면, 그건 가장 훌륭한 직업교육이기도 하다. 한 개의 문을 여는 열쇠를 주는 대신, 잠긴 문을 만날 때마다 열쇠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 그게 교양교육이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는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숨쉴 틈 없이 변화하죠. 대학 때 익힌 전공지식만으로 버틸 수가 없는 시대예요. 하나의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없지요. 교양교육은 변화 속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을 갖추도록 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양교육은 유능한 직업인과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교양교육이 망한 이유

지난 1월 교양교육개편위원회 포럼에 참석한 서울대 문용린 교수가 한마디 했다. “교양과목은 많아도 한국에 교양교육은 없습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도 거들었다. “우리는 교양교육이란 걸 받고 자란 세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양이 뭔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불균형한 인간입니다.”

한국에서 교양교육의 부재 혹은 실패는 현장의 교수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미국에는 ‘리버럴 아츠 에듀케이션(liberal arts education)’에만 전념하는 단과대학이 400개쯤 있다. 전공 없이 교양교육만 하는 대학. 섣부른 지식 대신 고전과 교양으로 기초를 닦은 졸업생들의 높은 경쟁력은 정평이 높다. 자유교양대학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교양교육은 4년제 종합대학의 1∼2학년용 교양강좌가 전부다. 그나마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냉소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대학과 교수 모두에게 있었다. 대학은 교양이 무엇인지 몰랐고, 교수들은 교양교육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도 교수는 “한국 교수들 상황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교양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유학 가서 전공만 파다가 돌아왔다”며 “시야가 넓은 교양교육을 시도해볼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사회가 요구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발시대, 한국 사회가 대학에 기대한 것은 교양, 시민, 공동체 같은 한가한 것들이 아니었다. 기술, 기능, 효율이었다. 당연히 교양교육은 변두리로 밀려난 채 방치됐다.

경희대라는 선발대

2007년 경희대 조인원 총장이 도 교수를 불렀다. 교양교육을 개편해야겠으니 맡아 달라고 했다.

“대학이란 데가 뭘 고치기가 쉽지 않아요. 학과 이기주의, 영역 지키기 의식이 강해서. 교수 한 명 뽑는데도 내 사람 데려오겠다고 쌈박질이나 하고. 총장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현실의 이해관계를 뚫을 힘이 있어야 하죠. 개인적으로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이게 될까, 솔직히 의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교양교육이 이래야 한다는 정도, 방향을 제시하는 스케치만 내고 도망쳤어요(웃음).”

도 교수의 보고서를 토대로 개혁이 시도되긴 했다. 하지만 여기 돌을 빼서 저기에 괴는 식의 부분 개편은 도돌이표 마냥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난해 말 총장이 다시 그를 찾았다.

“그때는 거절을 못하겠더라고. 총장이 이렇게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하겠다는데. 나로서도 대학교육에 대한 회한 같은 게 있었고. 나는 제대로 가르쳤는가(웃음). 그래서 결국 맡게 됐습니다.”

도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교양교육개편위원회는 지난 1년간 연구에 들어갔다. 그렇게 내놓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운영안은 여러 지점에서 파격이다. ‘인간의 가치 탐색’ ‘우리가 사는 세계’란 제목의 ‘1학년 공통필수 중핵교과’는 철학도, 역사도, 사회과학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기도 하다. 7개 영역 중 5개를 선택해 듣는 ‘주제영역별 배분이수제’ 역시 전공을 넘나든다.

“몸을 주제로 한 강좌라면 그 안에 몸에 관한 생물학적 철학적 문학적 관점이 다 들어가야 해요. 그게 미션이에요. 생물학과 교수가 가르친다고 해도 반드시 인문학 사회과학적 관점이 가미돼야 하죠. 이게 한국 교수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주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1월 워크숍을 열어 강사 교육도 할 계획이에요. 교수법에 대해 토론하고 공통 강의계획안도 짜고. 교수들도 훈련과 노력이 필요해요. 금방은 안 되겠죠. 2∼3년쯤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봐요.”

도 교수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도 교수는 “큰 반대가 없었던 건 나한테도 미스터리”라고 했다. 눌려왔던 불만 때문일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교양교육이 반성도 쇄신도 없이 언제까지 이 상태로 계속 갈 수 있을까. 그런 위기감은 대학 강단에 오래 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요.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다들 말해요. 우리가 애들에게 가르쳐야 할 걸 가르쳐 왔는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래서 경희대의 실험은 대학 전체를 꼬리에 단 선발대의 모험일 수 있다. 경희대가 성공하면 한국 대학의 교양은 높아질 수 있을까.

“다른 대학들이 먼 산 바라보듯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희대가 한다는데 잘되면 따라해 보자, 혹 실패해서 꽈당 자빠지기라도 하면 꼴좋다, 그럴 일이 아니에요. 이 기회에 대학들이 교육다운 교육을 하기 위해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