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상익] 특권계급의 울타리인 비자금 기사의 사진

“권력으로 흘러 들어가는 뇌물의 파이프를 차단하는 게 검찰 수사의 목표다”

비자금을 누가 먹었는지 수사가 한창이다. 자물쇠를 채운 회장님의 입이 언제 열릴까 궁금하다. 김영삼 정권 때 일이다. 전직 대통령과 재벌 회장들이 법정에 섰다. 비자금 때문이다. 검찰은 그걸 뇌물이라고 하고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쓰라고 해서 받은 돈이라고 했다. 회장들은 관례라고 했다.

그 중 제일 젊었던 재벌 회장의 순진한 자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청탁을 하려면 대통령에게 돈을 줘야 하는데 얼마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재벌 회장들끼리도 그건 영업비밀이었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50억원을 꺼내 봉투에 넣고 문을 나서다 액수가 너무 적은 것 같아 다시 50억원을 더 넣어 100억원을 채워 가져다주었다고 자백했다.

회장님의 개인 책상 서랍 속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있을까 의아했다. 그의 앞에는 죄수복을 입은 전직 대통령이 듣고 있었다. 젊은 회장의 뒷얘기가 더 웃겼다. 나중에 알아보니 30억원만 주면 될 걸 너무 많이 주었다고 불평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철옹성인 각종 규제들이 재벌들에게는 거미줄 같이 약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김대중 정권 때도 역시 큰 비자금사건이 터졌다. 호남을 배경으로 급성장한 재벌 회장이 주인공이었다. 그 재벌 회장은 권력 곳곳을 마비시켜 놓았다. 그를 잡기 위해 슈퍼맨 특별검사가 처음 등장했다. 평소 잘 알고 있던 특별검사를 만나 본질을 얘기해 달라고 졸랐었다.

“내가 수사한 그 재벌 회장님은 김대중 정권에서 지원한 벤처기업에 편승한 천재 같은 사기꾼이죠. 정말 머리가 비상해요. 쓸모없는 회사를 사들여 겉을 잘 포장해서 잘나가는 회사로 만든 거예요. 그런 다음에 유력인사를 동원해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일반주주로부터 돈을 끌어 모은 거죠.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고요.”

특별검사의 말이었다. 회장님 주위에는 폭력배와 돈 주고 차용한 권력이 떠받치고 있었다. 회장은 법을 가지고 노는 지능범이기도 했다. 특별검사가 감탄하면서 덧붙였다.

“그 천재 같은 그룹 회장님은 법을 지키지 않고 일하니까 언젠가는 걸릴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죠. 동향 출신으로 출세한 사람들을 한 다리 건너면서 알게 됐고 보험용으로 돈을 줬죠. 부탁하고 돈을 주는 나쁜 머리가 아니었어요. 미리 돈을 줘놓고 사람을 포섭한 스타일이었죠.”

청탁이 없으니까 뇌물죄에는 걸리지 않았다. 장부만 분식해 놓으면 비자금도 사업자금으로 둔갑했다. 뇌물제공 방법도 기기묘묘했다. 권력가가 가진 쓸모없는 야산을 거액으로 매수해 주기도 했다. 그들은 절대 잡힐 리가 없다. 그들이 토끼라면 법은 거북이였다. 전직 대통령을 심판하던 법정에서 홍만표 검사 혼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었다.

“서랍에서 나온 100억원은 노동자들의 돈이 아닙니까?”

정의로운 검사였다. 방청석에서도 “그 돈들은 중동 근로자들을 착취한 겁니다”라는 울분이 터져 나왔었다.

재판장이 앞에 서 있는 재벌 회장들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들 중에 돈세탁 안 하고 청와대에 돈 가져다 준 사람 있습니까? 있으면 말해보세요.”

“받는 쪽에서 세탁을 안 하면 안 받아서 했습니다. 주고받는 쪽에서 피차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재벌 회장의 죄의식 없는 당당한 대답이었다. 그들은 왜 권력이 정권마다 관례처럼 돈을 요구하느냐고 항의했다.

재판 결과가 흥미로웠다. 재벌은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명분으로, 권력은 지엄한 왕이라는 실질적 이유로 법의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뇌물이 권력으로 흘러들어가는 파이프를 차단해야 한다. 그게 비자금 수사다. 그것만 성공하면 사실상의 특권계급이 없어진다.

수십 년 전의 권력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떤 사업도 하지 않고 아직도 호화스럽게 사는 경우가 있다. 재벌 회장의 어떤 사건도 결국 무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예외가 존재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부분 마취된 사회다. 이번 수사가 흘러간 영화의 재탕 삼탕이 안 됐으면 좋겠다.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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