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4) 둥근 달은 다정하던가 기사의 사진

어스름 새벽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떴다. 머리 푼 은자가 나무에 기대 무연히 펼쳐진 하늘을 본다. 그는 긴 소맷자락 사이로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킨다. 냇물은 갈래지어 흐르고 나뭇잎은 휘청거린다. 새벽을 기다려 밤을 지새운 은자가 나직이 읊조린다. 달아, 산이 높아 더디 떴느냐….

달을 노래한 시는 열 수레에 실어도 남는다. 차고 이지러지는 이치를 달인들 알랴마는 제 심정에 겨운 시인은 그 까닭을 거듭 묻는다. 조선의 문장가 송익필은 서른 날 중 딱 하루 둥근 달이 야속했다. ‘둥글지 않을 때는 늦게 둥근다고 탓했더니/ 둥글고 난 뒤에는 어이 그리 일찍 저무는가.’ 중기의 문신 권벽은 보름달 기다려 꽃 보기를 욕심내다가 한숨짓는다. ‘꽃 활짝 필 때는 둥글지 않더니/ 달 밝고 나니 꽃은 이미 져버렸네.’

보름달은 노상 반갑고 초승달과 그믐달은 숫제 슬픈가. 당나라 이상은은 아니란다. 그는 야멸치게 말한다. ‘초승달 이울었다고 쓸쓸해하지만/ 둥근 달이라고 언제 유정하기나 했던가.’ 이런즉 달은 기울어서 애달픈 것도, 가득해서 미더운 것도 아니다. 뜨고 지는 달은 그저 시간의 조화이려니, 저 탐미적인 시인 장약허는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강가에서 누가 처음 달을 보았고/ 강가의 달은 누구를 처음 비추었는가/ 인생은 대대로 끝이 없는데/ 강가의 달은 해마다 닮았구나/ 저 달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몰라도/ 다만 흘러가는 강을 바라다보네.’ 달은 뜨고 져도 물은 흐르고 흐른다. 달은 그림 속에 갇히고 물은 그림 밖으로 나간다. 조선 왕실의 화가 이정이 그렸다. 붓질이 헐거워 그림이 욕심 없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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