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왜 음모론에 솔깃해하나요?” 기사의 사진

블로그 ‘Ask a Korean’에 쏟아진 외국인들의 궁금증

“한국 남자들은 왜 그렇게 당구를 잘 치나요?”

재미교포 박모씨의 영문 블로그 ‘Ask a Korean(한국인에게 물어봐)’. 한국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 했더니 뉴욕의 제프라는 청년이 보낸 첫 질문은 이랬다. 박씨는 로스쿨 학생이던 2006년 “한국은 왜?”라며 이것저것 묻는 사람이 많아 이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메일로 질문 받아 답하기를 변호사가 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난 4년간 하루 5∼10건씩 수천 가지 질문을 받았다. 질문자는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외국서 태어난 교포 2, 3세. “한국 여성들이 말하는 ‘Oppa(오빠)’가 무슨 뜻이냐”부터 한·일 관계를 묻는 질문까지 시간이 갈수록 궁금증의 폭이 넓어졌다. 16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질문마다 인터넷을 뒤지고 한국 친지들에게 물어가며 답변한다.

한국 사람은 왜?

박씨가 받은 질문 중엔 ‘한국 사람은 왜…’로 시작하는 게 가장 많다. “한국 사람은 왜 술을 많이 마시죠?” “한국에 교환학생 갔었는데, 커피를 왜 그렇게 좋아해요?” “한국 여성은 햇볕에 노출되는 걸 왜 그리 싫어하죠?” 이렇게 예상 가능한 질문들 가운데 이 질문이 눈에 띈다. “한국 사람은 왜 음모론에 그토록 솔깃해하나요?”

다년간 여러 개발도상국을 돌아다니며 생활했다는 질문자는 “개도국마다 문화는 다르지만 사람들이 기이한 음모론을 쉽게 믿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은 이제 부유한 나라인데, 음모론 대하는 방식은 아직 소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질문에 담긴 문장은 이게 전부였지만 그 배경엔 소위 ‘광우병’ 촛불시위와 천안함 사태를 둘러싼 음모론 논쟁이 있다고 짐작된다. 박씨는 이렇게 답했다.

“퀴즈를 내겠다. 다음 중 지난 50년간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고르시오. ①대통령 지시로 유력한 야당 정치인이 일본에서 납치됐다 ②공수부대가 민간 시위대를 공격했는데 그 소식이 며칠간 도시 밖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③세 정당이 합당하면서 개헌키로 이면 합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답은 ‘없다’다. 개도국에서 음모론이 나도는 건 그런 일이 계속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개도국을 벗어난 지 20년도 안됐다.”

아시아를 넘어 팽창하고 있는 한국 연예산업도 외국인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요소였다. ‘넬(Nell)’이란 이름의 질문자는 “한국 팬들은 왜 그렇게 공격적인가요?”라고 했다.

“한국 연예인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안티팬’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한국에선 안티팬이 되는 게 인기 가수의 팬이 되는 것만큼 유행하는 것 같다. 미워하는 연예인이나 좋아하는 스타의 안티팬들을 공격한다는데 왜 그러나?” 박씨는 1990년대 후반 연예기획사가 육성한 아이돌 그룹의 등장까지 거슬러 올라가 한국의 ‘팬 문화’를 설명했다.

이런 것도 궁금해했다. “한국 사람은 왜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박찬호를 그렇게 응원하죠? 요즘은 별로 잘하지도 못하는데.” “한국에 가보니 거리마다 러브모텔이 있는데 왜 여자의 성생활엔 그렇게 보수적이죠?” “사업상 만난 한국인이 있는데, 왜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까요? 항상 미스터 ○○라고만 해요.” “스타크래프트에 왜 그리 열광하죠?”

한국, 헷갈려요

“웬 킴(Kim)이 그렇게 많아요?” 한국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는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은 이름이다. 한 캐나다 여성은 “오빠가 한국인이 많이 묵는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는데 전화를 돌려줄 때마다 이름이 다 비슷해서 헷갈려한다.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형제자매 간에는 이름이 왜 비슷하냐(돌림자에 관한 질문). 한국엔 이름으로 쓸 어휘가 별로 없는 거냐는 질문도 있다. 박씨는 아예 ‘한국 이름 해설’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름 못지않게 외국인들이 헷갈려하는 것은 한국인의 외양과 패션이었다. 다른 아시아인과 한국인을 구별하는 방법 좀 알려 달라, 한국인 패션은 다 비슷하다, 유행에 왜 그렇게 민감하냐는 질문이 쇄도하자 박씨는 이렇게 농담 섞인 답을 했다.

“먼저 동남아인과 동아시아인(한국 중국 일본)을 구별하라. 그게 안 되면 (한국인 식별은) 포기하라. 동아시아인 중에는 수염을 기르지 않은 남성, 겨드랑이 털을 제거한 여성은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다. 쌍꺼풀과 코 높이는 성형수술 때문에 더 이상 식별 기준이 되지 못한다. 유행? 한국은 수십 년 전만 해도 농경사회였다. 커뮤니티 구성원이 서로에게 신경 쓰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당연히 남들 눈 의식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외국인 눈에 ‘충격적으로’ 저렴하고 ‘위대한’ 제도로 비친 모양이다. 한국에서 살게 된 캐나다인이라는 ‘리사(Lisa)’는 “어떻게 그런 시스템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질문했다. 미국인 브라이언(Brian)은 “한국인들이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을 ‘공산화를 막아준 구원자’로 보는지, ‘민족 갈등을 부추긴 제국주의자’로 보는지 궁금하다”고 했고, 한 중국계 미국인은 “우리 부모님은 항상 한국이 대만처럼 중국의 일부라고 얘기하는데 한국인도 중국에 유대감을 느끼냐”고 물었다.

한국, 어떻게 하면…

한국 여성과 결혼한 미국인 남편은 “한국사람 설득하는 방법 좀 가르쳐 달라”고 호소했다. “어떤 사실을 놓고 나는 A가 맞다, 아내는 B가 맞다고 주장할 때 우린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영어를 무척 잘하는데도 내가 찾은 미국 정보를 믿지 않고 항상 한국어로 된 네이버를 찾아봐요. 내가 아는 다른 한국 친구들도 아내랑 비슷해요. 한국인 설득하려면 한국어를 배워야 하나요?”

대학 신입생 딸을 둔 어느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 남성에 관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 딸이 한국 남학생과 사귀어요. 그 청년은 딸과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식의 ‘표현’은 하는데 딸이 속마음을 물어보면 한발 빼는 것 같아요. 한국 남성은 원래 그런 가요? 딸이 결혼까지 생각하는데 내가 좀 알아보니 한국은 남성 중심 사회인 것 같더군요. 결혼 상대로 어떨까요?”

‘어떻게 하면…’ 유의 질문은 대개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던진 것이었다. 한국 국적을 따려면, 한국에서 영어 강사가 되려면, 한국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히스패닉인데, 흑인인데 한국에 간다면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 묻는다.

반면에 얼마 전 서울에 와서 살고 있다는 미국인 ‘제이슨(Jason)’은 “어디 좀 조용한 데 없겠느냐”고 했다. “아파트 주변은 항상 붐비고 외출할 때마다 외국인이어서 사람들 시선을 받는다. 조용한 곳을 찾아 산에 갔는데 등산객에 파묻혀 또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사생활 방해 없이 쉬려면 어디에 가야 하나.”

박씨는 미국의 인기 블로그 ‘Ask a Mexican(멕시코인에게 물어봐)’에서 힌트를 얻어 재미 삼아 이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Ask a Frenchman(프랑스인)’ ‘Ask a Russian(러시아인)’ 등 8개 ‘Ask 블로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한국의 모습이 그의 블로그에 담겨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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