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낙마한 장관 후보가 부른 단상 기사의 사진

옛날 중국에선 제사 지낼 때 죽은 이의 어린 자손을 죽은 이의 신위(神位)에 앉혀 놓고 그 아이가 음식을 마음껏 먹게 했다. 조상의 신이 어린 자손에게 내려앉은 것으로 여기는 풍속이었다. 조상의 신을 대신하는 아이가 앉은 자리가 시위(尸位)다. 그리고 차려 놓은 음식이 소찬(素餐)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시위소찬(尸位素餐)’이다. 조상을 대신하는 아이가 음식을 거저 맘껏 먹듯, 높은 관직을 차고 앉아 하는 일 없이 국록만 축내는 걸 시위소찬이라고 한다.

깎다가 만 머리가 된 내각

우리나라의 장관직이 시위소찬하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정치인 중에는 더러 시위소찬하는 사람들이 없지도 않은 것 같으나 장관들 중에 놀고 국록만 타 먹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모든 국가 대사는 장관들이 참여하는 국무회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그중 소관 업무는 해당 장관이 직접 입안하고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새퉁빠지게 장관의 역할에 시위소찬의 고사를 끌어다 댄 것은 며칠 전, 지난여름 개각에서 장관 후보로 지명받았다가 낙마한 인사를 우연히 만나면서 생각이 떠올라서이다. 지난 8월 8일 단행된 개각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등 세 사람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그 후 국무총리는 정운찬 총리의 사퇴로 공석이 된 지 두 달 남짓 만에 김황식씨가 후임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장관 후보들이 낙마한 지경부와 문체부는 교체 대상이었던 최경환, 유인촌 장관이 아직도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이 11월 중순이니 지경부와 문체부의 경우 물러가기로 돼 있던 수장들이 개각이 있었던 지난 8월 초순부터 100일 가까이 예정을 넘겨가며 조직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의 정부 조직 운영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발을 하는데 꼭 한쪽 머리만 깎다가 만 것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장관을 시한부 수장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장관 자신도 국회 답변에서 “나 장관 오래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다. 해당 부처뿐 아니라 정부 전체의 긴장감이 떨어질 게 뻔하다.

지금의 장관들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대통령이 교체키로 했다면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장관이라는 직책이 이 사람이 해도 그만이고 저 사람이 해도 그만이거나 시위소찬하는 자리가 아닐진대, 그만한 이유가 있어 교체키로 했으면 빨리 적임자를 찾아 보임하는 게 국정을 보다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길일 것이다.

국정운영, 긴장의 끈 조여야

물론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만큼 높은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대통령으로서는 총리와 장관 2명의 후보가 청문회에서 도덕성이 문제가 돼 낙마한 지난번 8·8 개각이 악몽일 것이다. 그래서 될 수만 있으면 개각 같은 것은 피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G20 정상회의를 치르는 등 국가적 중대사들이 많아 보충 개각을 미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부의 장관 교체는 국민에게 기왕에 공표한 사안이다. 미루면 미룰수록 국정 운영의 모습도 그만큼 이완돼 보일 것이다. 그동안에도 신임 총리와 외교통상부 장관을 임명하는 등 중요한 보각이 있었다. 이때 미뤄뒀던 두 부의 장관 인사도 함께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정권 임기 후반이다. 조그만 틈새라도 생기면 권력이 정신없이 새 나갈 시기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모 인사는 정권 임기 후반에 들어서니까 권력이 하루에 저수지만큼씩 누수되는 게 보이더라고 했다. 그것도 여권, 특히 권력 핵심부에서부터 새 나가더란다. 권력 누수야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줄일 수 있는 데까진 줄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정부 운영에서부터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한다. 하다가 만 개각도 그런 차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G20 정상회의라는 큰 잔치도 끝났고 이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개미구멍도 생기지 않도록 사소한 것들까지 소홀히 하지 말고 챙길 때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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