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혈액 이용 인체 발전 몸속 의료기기 영구 작동한다 기사의 사진

나노 발전 기술의 힘

심장에 이식하거나 혈관을 돌아다니며 질병을 치료하는 초소형 로봇이 배터리 충전 없이 영구적으로 작동할 수는 없을까?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일들이 머지않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나노 발전(發電) 기술’의 개발 덕분이다. 2005년 미국 조지아공대 왕중린 교수팀이 세계 처음으로 ‘나노 발전기(Nano generator)’의 개념을 제시한 뒤, 많은 대학과 연구소들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근육의 움직임(수축 및 이완)이나 심장 박동, 혈액 흐름 같이 동물이나 사람 몸에서 발생하는 생체 역학적 힘을 통해 전기를 만드는 ‘생체 발전’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물리적 힘으로 전기 생성되는 ‘압전 효과’ 이용=나노 발전기는 나노 크기(10억분의 1m)의 극미세 물질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이며, ‘압전 효과(piezoelectric effect)’가 핵심 원리다. 이는 압전체(혹은 물질)에 압력이나 구부러짐, 온도, 진동 등 물리적 힘이 가해질 때 전기가 발생하는 특성이다.

압전 효과를 이용한 대표적인 것이 가스레인지 점화장치다. 가스레인지는 손잡이를 돌려 벌크형(덩어리 형태) 압전체에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생성돼 불꽃이 생기며 공급된 가스와 만나 불이 붙는다. 또 걸을 때 불빛이 나는 아이들 신발 역시, 신발 뒤꿈치에 압전체가 들어 있어 걸을 때 압력이 가해지고 그 때 생성되는 전기로 불이 켜진다.

나노 발전기 연구에 쓰이는 압전 물질은 지금까지 ‘산화아연(ZnO)’이 거의 유일했다. 조지아공대 왕 교수팀도 지난해 얇고 잘 휘어지는 플라스틱 기판에 이 산화아연 소재의 나노 와이어(nanowire·머리카락 5000분의 1 굵기의 아주 얇은 도선)를 붙여 나노 발전기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햄스터에게 이렇게 만든 나노 발전기를 붙이고 발전량을 측정한 결과,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거나 먹이를 먹을 때마다 나노 와이어가 구부러지는 압전 효과에 의해 0.1∼0.15V의 전기가 흐르는 것을 관찰했다.

또 사람 손가락과 쥐의 심장 및 횡경막에 각각 나노 발전기를 장착해 실험한 결과 손가락 굽힘과 쥐의 심장박동 및 횡경막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도 적은 양의 전기값이 측정되는 것을 확인했다.

세계 과학계는 근육의 움직임 등 불규칙적이고 아주 미세한 생체 운동을 전기 에너지로 바꾼 이 실험 결과에 크게 주목했으며, 나노 발전 기술은 2009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세상을 놀라게 할 10대 기술’로 선정됐다.

◇KAIST 연구진, 한층 진일보한 나노 발전기술 개발=최근 KAIST 신소재공학과 이건재 교수팀은 산화아연보다 압전 특성이 더 뛰어난 세라믹 나노 박막(薄膜)물질 ‘티탄산바륨(BaTio3)’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유연한 고효율 나노 발전기를 개발해 냈다.

티탄산바륨 나노박막 물질은 깨지지 않고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체에 해롭지 않은 생체 친화적 특성을 가진 신소재다. 이 물질을 얇고 잘 휘어지는 유연한 플라스틱 기판 위에 옮겨 발전기를 만들고 외적인 힘이 주어질 때마다 전기를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보고된 다른 나노 발전기들에 비해 단위 부피당 가장 많은 전기 발생량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나노 레터스’ 최신호에 게재됐으며 관련 기술은 국내외 특허 출원됐다. 이 교수는 “티탄산바륨은 산화아연보다 10∼30배 가량 높은 압전 특성을 가지므로 향후 나노 발전기로 최적화할 경우 전력 생산 성능도 그 정도 차이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몸 속 삽입 미세 로봇, 바이오 센서 등의 영구 동력원으로 활용=사람이나 동물의 생체 운동으로 생긴 극소량의 전기를 당장 유용하게 활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노 발전기는 조만간 병원균이나 암세포의 단백질을 감지하는 나노 크기의 바이오센서 등 체내 삽입형 초소형 기계 장치의 유용한 전력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신체 안을 떠돌면서 각종 기능을 수행하는 생체 이식용 나노 센서를 많이 개발했지만 전원 문제 때문에 실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노 센서는 아주 작은 전원만으로도 몸 속에서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나노 발전기는 또 인체가 활동하는 한 무한 작동이 가능해, 예를들면 몸 속에 투입해 심장질환 예고 및 치료를 하거나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찾아가 제거하는 미세 로봇이 영구 작동할 수 있는 꿈 같은 일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팀은 이번 논문의 공동저자로 참가한 조지아공대 왕 교수팀과 함께 동물 이식형 나노 발전기 생체 실험을 후속 연구로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수 많은 나노 발전기를 겹쳐 옷감 형태(일종의 발전 섬유)로 만든 재킷을 입으면 단순히 걷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만으로도 휴대전화나 MP3 등을 충전해 쓸 수 있는 이른바 ‘사용자 발전(UCP:User Created Power)’도 가능하리란 전망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