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김나래] 복덩이와 민폐 사이 기사의 사진

임신 7개월의 김윤미 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는 2년 뒤 런던올림픽 출전을 노리고 있었지만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뜻밖의 좋은 성적을 거두자 고민 끝에 출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우승 뒤 소감을 묻자 “뱃속 아이가 복덩이다. 아이가 생기면서 시합 때마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서도 “아기 때문에 동료들한테 민폐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고 그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아시안게임 출전은 ‘아이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까’ ‘팀에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나에게 이런 기회가 또 올까’ 등을 놓고 수십 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일 듯하다.

임신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일하는 여성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김 선수처럼, 본인에겐 아이가 복덩이이지만 조직이나 회사엔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임신부가 적지 않다. 임신과 출산은 일하는 여성의 경력관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8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여성의 경력단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여성근로자 10명 중 8명이 출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전직했다. 한창 일할 연차에 아이를 낳고, 3개월의 출산휴가, 여기에 눈치껏 육아휴직 1년을 하고 나면 조직에서 ‘잘 나가기’는커녕 ‘버티기’도 쉽지 않단 얘기다. 아이가 하나일 땐 친정엄마, 시댁식구 등 가족 친지를 총동원해 안간힘을 쓰지만 아이가 둘이 되면 그때부턴 또 사정이 달라진다. 직장 여성은 30대에 조직에서 추락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여삼추’란 말이 괜히 등장한 게 아니다.

어렵게 살아남더라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위기가 시작된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워킹맘 선배는 “한국에서 ‘사’교육은 ‘엄마표’ 교육”이라고 말했다. 매일 챙겨줄 수 없는 워킹맘들은 이 때문에 아이에게 죄책감을 갖고 자녀 교육을 위해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기업은 물론 정부에서도 고위직이나 간부직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여삼추나 중도 포기를 거부하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가포녀(가정을 포기한 여자)’의 길이다. 아이나 가정은 제쳐두고 일해야 직장 내 좋은 부서에서 간부 자리라도 한번 앉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결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25∼54세 여성 1185만여명 중 육아나 가사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경력단절 여성은 405만명이다. 주요 선진국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출산율도 높이고 여성고용률도 높여온 것과 대비된다. 이명박 정부의 여성 일자리 정책은 이런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직업 상담 등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재취업을 지원하는 ‘새로 일하기 센터’를 77개에서 내년에 90개로 늘리고 예산도 200억원에서 233억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성의 경력단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을 하면서 이전보다 좋은 직장으로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아직 부족하다. 여성가족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퍼플잡(유연근무제)과 가족친화인증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용문화를 주도하는 기업과, 세상의 반쪽인 남성들이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이란 구호는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아동상담 전문가이자 워킹맘인 실비안 지암피노는 ‘일하는 여성은 죄인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여성의 죄의식은 사회와 문화가 부과하는 압박감에서 비롯됐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은 자녀의 건강, 안정적인 삶, 교육 문제를 사회나 부부가 함께 해결할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여성만 짊어져야 할 짐으로 보는 인식이다.”

김나래 정치부 기자 nar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