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승만 (16) 내키지 않는 간증 자리서 평생의 은인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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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데이비스앤앨킨스 대학에서 공부하던 첫해인 1956년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찰스턴 장로교회로부터 간증 초청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간증 초청을 받곤 했다. 학교 예배 때 지나온 삶에 대해 고백한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많은 교회들과 기독교연합사업단체들이 한국의 전쟁고아 등을 돕기 위해 모금과 입양 사업 등을 벌이고 있었기에 나처럼 한국의 실상을 직접 알려 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멀리까지 다닐 만한 시간은 없었다. 학업도 빡빡했지만 생활을 위해,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학생 식당 아르바이트도 꼭 해야 했다. 때문에 찰스턴 간증 건은 고사했다. 학장님이 나서서 두 번이나 부탁했는데도 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총장님이 나를 불렀다. “찰스턴 장로교회는 우리 학교에 가장 큰 기부금을 내는 곳입니다.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학교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꼭 다녀와 주세요.” 더 이상은 거절할 수 없었다. 며칠 후 학장님 차를 타고 교회로 갔다. 그러나 내키지 않는 마음은 여전했다.

교회에 도착한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3000여명의 성도 수나 예배당 크기나 내가 본 교회 중 최대 규모였다. 그곳에서 나는 그동안 해 왔던 것과 대동소이한 간증을 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감흥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가려고 하니 담임목사님께서 당회장실로 부르셨다. 그곳에는 초로의 여성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이분은 미세스 프레스톤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저희 교회 시무 장로님의 부인이시지요. 여전도회장으로도 오래 일하셨습니다.”

프레스톤 부인은 내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승만군의 삶과 고백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괜찮다면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교에 가면 그 3년간의 학비와 경비를 내가 부담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겠습니까?”

나는 놀라다 못해 충격을 받았다. 몇 번이나 거절했던 이 간증 뒤에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회개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내 미래를 내가 계획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 일에 순종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 주시는구나!”

이렇게 인연을 맺은 프레스톤 부인은 내 유학 기간 최대 후원자였음은 물론 심정적으로도 내게 ‘미국 어머니’ 역할을 해 주셨다.

2년간의 대학생활 후 57년, 나는 졸업장을 받게 됐다. 한국에서는 그렇게도 받기 어렵던 졸업장이었던 터라 졸업식에서의 감회는 남달랐다. ‘이 좋은 모습을 평양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나마 프레스톤 부인이 찾아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줘서 쓸쓸함을 덜 수 있었다.

나는 졸업 후 루이빌 켄터키에 위치한 루이빌 장로교신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입학까지 남은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나 해 볼까 하고 친구 따라갔던 버지니아 코빙턴에서는 뜻하지 않게 한 교회의 주일 설교를 맡기도 했다. 처음에는 경험이 없다고 고사했다가 성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맡게 된 것인데 미국 교회의 규례와 관습, 절기, 체계를 익힌 소중한 기회였다.

9월을 맞아 나는 짧게나마 정들었던 첫 목회지 코빙턴을 떠나 루이빌 장로교신학교로 향했다. 이 학교를 택한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전통 있는 장로교 계통 신학교를 찾던 중 그곳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것뿐이다. 그런데 루이빌과의 인연은 내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이 됐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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