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6) 견뎌내서 더 일찍 피다 기사의 사진

첫눈 온다는 소설이다. 추위 속에도 볕이 남아 소설은 ‘소춘(小春)’이라 불린다. ‘작은 봄’은 봄이 아니라 ‘희망’일 테다. 북풍한설이 제철 아닌 목숨붙이를 쓸어가도 목숨은 철 철의 기억이 남아 뒷날을 도모한다. 희망은 더러 기억에서 움튼다.

산중에 폭설이 왔다. 오뚝한 산봉우리가 흰 고깔을 썼다. 서고 앉은 바위 형체는 또렷한데, 길은 끊겨 뵈지 않는다.

복건 차림의 선비가 방안에서 팔을 괴고 밖을 내다본다. 어스레한 저녁 기운에 봐도 희끄무레한 나무 몇 그루가 멋들어지게 휘었다.

키 큰 쪽은 소나무다. 솔잎에 눈꽃이 피어 가시 돋은 밤 같다. 철모르고 푸른 게 아니라 철 아랑곳없이 푸른 게 소나무다. 소나무는 철을 이긴다. 하여 설송의 기특함은 세한의 상징이다. 그 곁에 나지막이 팔 벌리고 선 두 그루는 무슨 나무인가. 되물을 것 없이 매화나무다. 선비 집 마당에 괘다리적은 고욤나무를 심겠는가. 하얀 살결 옥 같은 얼굴의 매화라야 넘을은 소나무와 짝이 된다.

그림 속의 매화는 아직 꽃소식이 없다. 가지마다 옴팍 눈을 뒤집어쓴 저 매화는 꽃 피지 않은 설중매다. 매화는 늦겨울을 지나 기지개를 켜고 이른 봄이 와야 잇바디를 보인다. 문인 김안국이 그랬던가, 꽃이 없다고 운치를 보지 못하면 꽃 사랑하면서도 꽃 모르는 사람이라고. 차가운 눈 속에서 매화는 뜨겁다. 개화를 예비하며 용 써서 견딘다. 견뎌서 이른 꽃핌을 이루기에 매화는 복사꽃과 봄을 다투지 않는다.

조선 말기의 화원 조중묵이 그렸다. 작지만 갖출 것 다 갖춘, 소복해서 사랑스런 가작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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