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불가역적인 북한 핵무기 개발 기사의 사진

북한이 원심분리기 2000개를 가동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직접 ‘1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광경’을 목격했다니 북한이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니겠다. 이 시설로 저들은 1년에 고농축우라늄(HEU) 40㎏을 생산할 수 있고 이는 우라늄탄 2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던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이 북핵문제 해법으로 제시했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북한은 정확하게 반대상황으로 바꿔놓았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개발’ 의도와 능력을 공공연히 과시한 것이다.

고농축 우라늄 생산능력 과시

북한은 한 번도 핵무기 포기와 폐기를 시도한 적이 없다. 애초에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의도이고 행동이었다. 그들에게는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보다 ‘김씨 왕조’의 존립과 영속화가 더 절실한 과제다. 2대 세습과 3대 세습은 차원이 다르다. 3대째 통치권 이어주기는 그들의 표현 그대로 ‘김일성 민족’ 위에 군림하는 ‘김씨 왕조’의 공식 개창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핵개발은 불가역적인 목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정말로 북한의 핵 폐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여겼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적절한 수준에서의 관리는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경제봉쇄나 제재, 그리고 국제적 압력을 통해 그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고 여겼겠지만 북한 당국자들은 미국의 추측보다 훨씬 교활하고 영리했다.

우리가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을 주고 금강산 및 개성 관광을 재개한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눈을 부라리는 횟수는 줄어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화를 낼 때마다 더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눅이 들어 숙이고 들어오는 상대에게 취할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너그러이 섬돌 아래 거두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발아래 짓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저들은 줄수록 몸집을 키워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고려 말 송도를 휩쓸었다는 불가사리처럼.

박시환 대법관이 지난 7월 한 재판에서 북한의 법적인 지위에 대해 “반국가단체인 동시에 통일정책상 교류·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법 해석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고 뒤늦게 보도됐다. 법적으로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만 현실의 북한은 다르다. ‘반국가단체’는 ‘실체로서의 북한’이지만 ‘교류·협력 대상’은 ‘가상 혹은 희망으로서의 북한’일 뿐이다.

‘내재적 접근’ 北 주민에도

다시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를 떠올리게 된다. 초나라 군사가 내를 건너는 때를 틈타 공격할 것을 재상 목이가 주청했다. 송의 양공은 “군자는 남의 약점을 노리는 법이 아니다”면서 거부했다. 목이가 다시 내를 건넌 초군이 진용을 정비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공은 역시 ‘군자’임을 내세워 상대가 전투태세를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여지없이 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때 입은 부상이 빌미가 되어 결국 죽고 말았다.

이 시대에도 송양공은 적지 않다. 이들은 북한과 화해하고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게 혹 송도의 불가사리를 감당 못할 정도로 키워놓는 일이 아닌가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데 그럴 기미는 전혀 안 보인다. 북한동포를 못 돕겠다고 할 까닭이야 있을 리 없다. 문제는 2400만 그쪽 겨레를 볼모로 잡고 있는 ‘김씨 왕조’다.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 논리를 흉내 내서 말하자. 북한 체제에 대해 각별한 이해를 표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김씨 왕조’의 실정과 핍박으로 고통받는 그쪽 겨레붙이들에 대해서도 내재적 접근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같은 시각으로, 저들의 호전성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처지도 좀 봐 주고…. 북한은 결코 주민 핍박과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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