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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디터 송수정 파리 ‘사진의 달’ 르포… 11월의 파리, 사진에 빠지다

포토에디터 송수정 파리 ‘사진의 달’ 르포… 11월의 파리, 사진에 빠지다 기사의 사진

사진은 파리에서 처음 태어났다. 1822년 조세프 니세포르 니엡스가 처음으로 빛을 고정시켰고, 이후 루이 다게르가 1839년에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은판사진술을 발명했다.

이 해에 프랑스 정부는 다게르에게서 일종의 특허권을 사들여 사진술을 공개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었겠지만, 고맙게도 그들은 사진술을 독점하지 않았다.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소유한다는 역설을 알았던 것일까. 150여년이 흐른 1980년 파리시는 11월을 ‘사진의 달’로 정해 갤러리,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다양한 사진 행사를 유치했다.

2년에 한 번씩 꼬박 15번을 치른 이 행사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한 달 동안 100개의 전시를 통해 1000명의 작가를 만난다’는 수식에 걸맞게 도시 전역에서 100개의 사진전이 열린다. 1860년부터 2010년까지 여성에 관한 사진을 통해 본 페미니즘, 폴란드 공산주의 시절의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앙드레 케르테즈 전 등 전시는 제목만으로도 일단 설렐 수밖에 없다. 파리 전역에서 1년 전에 전시 기획을 받아 추려낸 행사이니 전시의 밀도와 질은 이미 검증된 셈이다. 이 기간에 파리의 사진계 인사들은 하루 2∼3개씩 행사에 겹치기 출연을 한다.

마레지구에서

마레지구는 관광객보다 프랑스인들이 즐겨 찾는 문화와 예술의 거리다. 고급 부티크와 카페가, 그 옆으로 다양한 장르의 갤러리들이, 그 갤러리 모퉁이를 돌면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마리아주 프레르 찻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에 관심 있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피카소미술관을 찾아 마레지구로 오지만, 사진에 관심 있는 이들은 단연 유럽사진미술관을 먼저 찾는다.

파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마치 유럽 사진의 심장부라고 자부하는 듯한 이름이 도도해 보이지만,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7∼18세기 고급 주택가가 많은 마레지구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미술관은 1996년에 개장했고, 당시 소장 작품만 이미 2만점에 달했다. 작품 외에 사진집과 동영상 자료도 방대하다. 1940년 미술관 최초로 사진분과를 만들었던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이 2만5000점이란 사실에 비한다면 유럽 사진미술관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유럽 사진미술관은 사진의 달의 중심축에 있는 일종의 본부 같은 곳이다. 사진의 달은 매회 일정한 주제를 정해 전시에 일관성을 꾀하는데, 올해는 유럽 사진미술관의 소장품을 집중 조명하는 게 주제였다. 사진의 달에 맞춰 기획한 이곳 전시의 제목은 ‘극단에 대하여’. 소장품 중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혹은 미학적으로 우리의 통념을 넘어서고자 했던 다양한 사진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전시는, 사진이 비록 기술로 시작했으나 파리라는 도시의 철학을 먹고 자라났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든다.

길고도 짧은 만남

올 사진의 달에는 행사가 하나 더 보태졌다. 2박3일 동안의 포트폴리오 리뷰. 사진가들이 갤러리나 출판사 관계자, 기획자들에게 자기 작업을 보여줌으로써 밖으로 소개될 기회를 얻는 한편 다른 작업에 참여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만남의 장이다.

유럽은 물론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150여명의 사진가와 45명의 리뷰어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작가 한 명과 리뷰어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사흘 동안 최대한 많은 만남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고민의 결과다. 행사 스태프가 “5분 남았습니다”를 외치면 나누던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기 시작해 “1분 남았습니다” 소리에 다음 차례 사진가에게 자리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 제약은 리뷰어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평균 15명의 사진가를 만나는 동안 점심시간은 이동 시간을 포함해 딱 1시간에 불과하다.

자기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오는 작가들이니 만큼 작품이 설익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부터 꾸준히 작업을 발표해온 60, 70대까지 오히려 리뷰어들이 한수 배우게 되는 작가가 상당수다. 그러나 여기에서조차 궁합이 존재한다. 작가와 리뷰어 간에 죽이 잘 맞으면 20분이 아주 짧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10분도 길게 느껴진다. 나와 10분 얘기하던 작가가 옆자리에 가서는 20분이 짧다고 얘기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야말로 좋은 작업에는 기준과 답이 없다.

세계 최대 사진시장, 파리포토

사진의 달 행사의 꽃은 단연 ‘파리포토’다. 파리포토는 13년 전 사진의 달 기간에 맞춰 시작한 사진 판매 시장이다. 매년 열리는데, 사진의 달이 열리는 해에는 파리포토와 사진의 달이 유기적으로 전시를 연계한다. 올해 파리포토에서 주빈국처럼 초점을 맞춘 나라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 당연히 사진의 달 전시에도 이들 나라 출신 작가의 작업이 많이 선보이기 마련이다. 2012년에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됐다.

파리포토는 VIP 오프닝을 포함해 단 5일간 열리지만 이 기간 사진 거래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을 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다. 올해에는 91개 갤러리와 15개 출판사가 참가했다. 공간은 제한적이고 참가하려는 갤러리는 많다 보니 파리포토 입성이 쉽지 않다. 갤러리가 참가를 신청하면 선정위원이 참가 여부를 심사하는 식인데, 사진의 역사가 긴 일본에서 4개 갤러리와 2개 출판사가 부스를 얻은데 비해 한국 갤러리는 한 곳도 참여하지 못했다.

비록 한두 평짜리 작은 부스지만, 각 갤러리가 소개하는 작품을 꼼꼼히 보는 데만도 꼬박 이틀은 잡아야 한다. 해마다 방문객 수가 늘어 일반인들이 표를 사서 입장하려면 표 사는 데만 1시간이 걸리고, 그나마 입장한다 해도 오후쯤 되면 사람이 너무 많아져 제대로 구경하기 어렵다. 파리포토에 나온 작품 가격은 우리 돈 100만원에서 몇 억원까지. 과연 그 비싼 사진들이 수많은 인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속에서 손상되지 않고 무사할지 궁금하다.

on을 향한 off의 움직임

한 달을 머문다 해도 다 볼 수 없을 듯한 사진의 홍수 속에서, 또 하나의 사진 행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사진의 달 오프’. 사진의 달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되지 못한 작가가 스스로 전시를 꾸리면 함께 소개하고 지원해주는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작가가 시내 지하철역, 가게, 길거리 어디든 전시 장소만 확보하면 주최 측에서 홈페이지와 도록을 통해 홍보를 도와준다. 유럽 미술관의 높은 문턱을 넘은 작가들은 대부분 이렇게 거리의 작가로 시작해 포트폴리오 리뷰를 통해 스스로를 검증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마추어와 전문가가 어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듯 파리포토에서 작품을 구입해 선뜻 미술관에 기증할 줄 아는 컬렉터의 전통까지, 센강을 따라 노란 낙엽이 길게 깔리는 파리의 늦가을은 사진의 수도가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사진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포토에디터 송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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