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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종 종로구청장, 대한항공에 땅바꾸기 제안한 사연

김영종 종로구청장, 대한항공에 땅바꾸기 제안한 사연 기사의 사진

최근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서울 종로구가 현 청사 터와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 예정지를 바꾸자고 제안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영종(57) 종로구청장이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모임에서 꺼낸 말인데 여러 사람이 놀랐다. 아이디어가 과감해서, 또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구청장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그랬다.

김 구청장은 20여년 설계사무소를 운영한 건축가 출신이다. 서울 목동 주상복합아파트 하이페리온과 현대백화점 미아점을 설계한 게 그였다. 공간과 건축에 관해서라면 전문가라 할만하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7년, 종로구 도시계획위원회와 서울시 한옥심사위원회 심의위원으로 10년 넘게 일했으니 행정도 기본은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가 사기업과 국가기관의 땅 바꾸기라는 ‘발랄한’ 제안을 고민 없이 한 것은 아니다. 이 뜻밖의 발언 뒤에는 600여년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서울의 고민이 압축돼 있었다.

속수무책, 서울 구(舊)도심

2012년이면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들어선다. 관광명소 북촌과 한창 뜨는 효자동 필운동 사직동 등 서촌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4개의 조선 궁궐과 광화문광장 삼청동 인사동까지 종로구가 관할하는 이 일대는 대한민국 최대 문화벨트가 된다. 반가운 일인데 정작 종로구는 소화불량이라는 표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짓는 건 좋은데 준비 없이 너무 빨리 지으려고 한다. 그걸 감당할 능력이 종로구에는 없다. 구청장 된 지 몇 개월(7월 1일 취임했다)도 안 돼 사정을 몰라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아침에 가회동(북촌)에 가보면 출근 차량이 관광버스와 관광객 차량에 막혀 아예 나가지 못한다. 궁궐은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사람들이 찾아온다. 주차시설은 드물고, 버스는 아예 댈 데가 없다. 주차장이 없으니 버스가 일대를 뱅뱅 돈다. 소음과 매연은 말도 못한다. 이걸 해결하려고 경기상고(청운동)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설계 중인데 주민 반대가 심각해 어려운 상황이다.”

김 구청장은 “서울관에 300만명 관람객을 유치하겠다”는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발언 얘기도 했다. “미술관 짓는다고 했을 때는 막연히 손님이 더 많이 오겠지 했다. 감이 없었다. 300만명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계산해 보니 하루에 1만명꼴이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사람이 많이 오는 건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뒷받침할 배후 인프라가 없다. 서울시에도 문의를 했는데 대책이 없더라. 속수무책이다.”

“국가가 나서라”

그래서 주목받게 된 게 대한항공 호텔 건립 부지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종로구 송현동 풍문여고 앞 옛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 터 3만6642㎡(약 1만1100평)를 매입해 7성급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야심 찬 계획은 교육청의 반대에 막혔다. 학교 인근에 유해시설을 짓지 못하도록 한 학교보건법 때문이다. 호텔이 유해시설로 걸린 것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 소송을 냈다.

영빈관급 호텔이 청소년 유해시설이냐고 반문하는 대한항공의 억울함은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김 구청장은 진짜 질문이 다른 데 있다고 말한다. 이 공간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일대는 계속 밀려드는 관광인파에 질식사 직전이다. 대한항공이 호텔을 짓겠다고 나선 터는 이 지역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자 허파다.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가져야 하는 공간이다.”

김 구청장은 두 가지 제안을 했다. 국가와 시가 나서서 이 땅을 매입한 뒤 공원을 조성한다는 게 첫 번째 안이다. 공원 지하에는 주차장을 만들고, 남는 부지는 공연장 등 문화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구청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종로구청 한 해 예산을 다 쓴다고 해도 2000억원에 육박하는 토지 매입비조차 마련하기 힘들다. 김 구청장은 이런 아이디어를 이미 서울시에 제안했다.

“시에 ‘다른 걸 미루더라도 이것부터 해야 한다. 호텔이 한번 들어서면 돌이킬 수 없다. 급하다’고 말했다. ‘사비를 털어 계약금이라도 걸어야겠느냐’는 농담까지 했다. 그래도 시는 무반응이더라.”

국가 매입이 어렵다면? 그래서 나온 고육지책이 바로 땅 물물교환 아이디어였다. 종로구청과 대한항공이 땅을 바꾸면, 대한항공은 학교보건법을 피하고 구청은 호텔 부지에 계획했던 새 청사를 짓고 주차공간까지 확보할 수 있다. 8673.7㎡(약 2600평)에 불과한 구청 터는 규모 면에서 호텔 부지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공시지가가 3배 가까이 높아 교환 협상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배후 시설만큼이나 김 구청장이 관심 갖는 게 ‘지역 캐릭터’다. 그는 지역개발의 핵심이 공간의 캐릭터 잡기라고 생각한다. 경복궁 오른편, 서울시가 ‘경복궁 서측 지구’라고 부르는 서촌을 예로 들었다.

“서촌 역시 668동의 한옥이 있는 한옥 밀집지구다. 보존해야 할 한옥이 있고, 이건 보존할 거다. 하지만 북촌과 같은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고급 예술인 마을이 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면 보조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돕겠다. 지역개발도 결국 독창성이 중요하다.”

종로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다. 종로는 종로의 독창성과 정체성이 유지됐을 때 생존할 수 있다.

“종로구는 땅 파면 다 문화재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많이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하나를 망치면 회복하기 어려운 게 종로다. 서울이 600년 고도이고, 종로구는 그 심장이다. 오래 보존되고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것 하나만 잘하면 종로구가, 서울이, 대한민국이 먹고살 거리가 생긴다. 이것저것 많이 건드리면 실수만 한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가장 ‘종로적인’ 고민은 건물 속 작은 박물관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개발을 허가한 뒤 문화재가 나오면 건물 안 전시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어떤 문화재가 나오느냐에 따라 개발은 탄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구청장의 생각이다.

그는 “건물 속 작은 박물관만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고, 그걸 연결해 별도의 관광 코스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골칫덩이’ 인사동

김 구청장이 제일 걱정하는 건 인사동이었다. 그는 인사동 얘기를 꺼내면서 고개부터 저었다.

“인사동은 정말 자신 없다. 솔직히 마음속으로 포기한 동네가 인사동이다. 찾아오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을 볼게 있나? 물건이 살만한 게 있나? 음식도 그렇고. 어울리지 않게 화장품 가게가 들어오고, 중국산 물건 팔고. 한때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가짜 명품을 팔기도 했다. 임대료는 턱없이 올라서 우리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삼청동으로, 다시 청운동 부암동으로 쫓겨 갔다. (인사동은) 노력해야 한다. 엄청나게 바뀌어야 한다. 이런 말 하는 건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다. 남 탓 할 것 없긴 하다. 구청에서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사동 바꾸기를 위해 그는 농사라는 뜻밖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먼저 구청이 솔선해서 골목길 주차구획 2개에 해당하는 작은 토지를 텃밭으로 내놓았다. 도시농업과 조경을 위한 실험용 토지다. 옥상정원과 상자텃밭을 보급하고, 자투리땅 콘크리트를 걷어낸 뒤 도시농업을 장려하기로 했다. 그는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게 인사동이다. 그걸 먼저 바꿔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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