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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빼든 대교협 VS 느긋한 사교육


“입장 시작입니다!”

지난 21일 서울 잠실체육관. 대학입시 설명회를 개최한 사교육 업체 메가스터디 안내원의 시작 신호에 맞춰 500m 넘게 줄을 선 아줌마들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옆 사람을 밀치며 뛰어가는 아줌마들과 이를 제지하는 안내원들의 호루라기 소리로 아수라장이 된 설명회는 ‘백화점 대바긴 세일’ 현장보다 호황을 이뤘다.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지금 똑같은 시간에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와는 게임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거기는 본질적으로 공급자 중심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는 대교협을 겨냥해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대교협도 지지 않았다. 같은 시각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개최한 입시 설명회에서 성태제 대교협 사무총장도 사교육을 비판했다. “사설 입시기관에서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맞는가, 저는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두 단체가 추산한 설명회 참석 인원은 1만8000여명 대 4400여명. 숫자상으로는 메가스터디의 승리였다. 그러나 대교협이 올해 처음 대규모 입시 설명회를 개최한 점을 감안하면 선전(善戰)이었다.

대교협의 선전포고

“대학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사교육을 비판했던 대교협이 올해는 작정하고 공격에 나섰다. 사교육 업체의 전유물로 여겨진 입시정보 시장에 뛰어들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규모 입시 설명회 최초 개최’에 이어 ‘수능 예상 등급 커트라인 발표’ ‘전국 4년제 대학 모집단위별 예상합격선이 담긴 예측 프로그램 제공’ ‘수능점수 발표 당일 학원보다 빠른 분석자료 발표 계획’까지 ‘최초’ 일색이었다.

이 같은 대교협의 이례적 행보는 입시철마다 고액 상담료를 받는 사교육을 잡기 위해서다. 양정호 입학전형지원실장은 “학원이 왜곡된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1회 상담에 최대 50만원을 챙기고 있다. 이런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대교협이 나섰다”고 밝혔다. 대교협 대입상담센터는 교사 330여명을 동원해 인터넷, 전화, 대면 상담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대교협이 내세우는 강점은 데이터의 정확성. 4년 전부터 수집한 고교별 대학 진학 정보는 지난해 450여개 학교로 확대됐다. 전국 고등학교가 2200여개임을 감안하면 정보 수집율은 20%를 넘어섰다.

“예상 등급 커트라인도 전국 250여개 고교 교사들이 넘겨준 수능 가채점 자료를 토대로 분석했습니다. 학원은 어떤가요? 수능 당일 인터넷 사이트 개설해 놓고, 거기에 학생들이 점수 입력하면 검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어요.”(양정호 입학전형지원실장)

“학원은 합격, 불합격 자료가 없어요. 대교협은 다르죠. 지난해 우리 학교 3학년 464명, 3000여건의 지원 내역을 모두 대교협에 보냈습니다. 학생 한 명의 내신과 수능점수가 몇 점인데 특정 대학에 지원했더니 한번에 합격했다, 또는 추가 합격했다, 떨어졌다면 학생부 성적만 보는 1단계에서 떨어졌다, 아니면 수능과 학생부를 같이 보는 2단계에서 떨어졌다. 학원과 비교가 안 되죠.” 서울 신월동에 있는 광영고 김용택 진학지도부장이 말했다. 이 정도면 입시정보 경쟁은 ‘게임 끝’이란 얘긴데….

움직이지 않는 입시정보 시장

그러나 시장은 아직 미온적이다. 대교협이 전국 대학을 대표하고 입시를 총괄하는 기관이라 해도 시장에선 ‘신생 업체’일 뿐이다. 신생 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은 두 가지다. 가격이 저렴하거나, 질이 우수하거나.

문제는 서울 강남과 목동을 위주로 성행하는 유료 입시 컨설팅이 ‘필수재’보다 ‘사치재’에 가깝다는 점이다. 사치재는 가격 경쟁력이 덜 중요하다. 오히려 ‘무료 상담’이 싸구려 이미지를 양산할 수 있다. 결국 입시 시장에서도 ‘품질에 대한 신뢰’ ‘명품 이미지’가 관건인데 대교협이 소비자에게 아직 이런 인식까지는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섬숙 KT에듀아이 비교과연구소장은 “대치동 엄마들은 정부나 대학에서 하는 말만 좇다간 ‘개미 군단’밖에 안 된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특목고 엄마들만 상담하는 컨설턴트를 찾거나 바깥에 오픈되지 않은 정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두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킨 뒤 지역 일간지에 ‘대치동 통신’을 연재하는 등 ‘아줌마 튜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오히려 낙관하는 학원도 있다. “대교협이 대학별 합격 가능성을 알려주는 ‘온라인 배치표’를 만들면 시장이 커지는 거죠. 고등학교마다 쓸 테니까 대중화가 이뤄지는 거고. 우리 입장에선 나쁠 게 없어요. 대교협이 상담센터를 운영하는데 그건 학교 밖의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잖아요.”(이투스청솔 이종서 교육평가연구소장)

“가, 나, 다군 모두 붙은 애들은 나군 대학은 버린다, 이런 식의 패턴이 있어요. 추가 합격이 많고 구멍이 많은 학교가 있다는 거죠. 성균관대와 연세대 모두 붙은 애들은 주로 연대에 간다, 대교협이 이런 걸 말해 줄 수 있나요? 수험생들은 이런 정보를 원해요.” 메가스터디 손은진 전무의 말이다.

학생들도 사교육 업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회원이 133만여명인 수험생 인터넷 카페 ‘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다’에도 대교협과 사교육 업체 정보를 놓고 어느 쪽을 믿어야 하냐는 글이 속속 올라온다. 그러나 아직은 사교육 업체 쪽에 신뢰를 두는 네티즌 댓글이 훨씬 많다.

입시 컨설팅, 장사의 기술

현재 유웨이중앙, 이투스청솔 등 대형 사교육 업체가 받는 입시 컨설팅 비용은 온라인 4만∼5만원, 오프라인 40만∼50만원. 1회 1∼2시간 상담에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찍어주는 대가치곤 상당히 비싸다. 대형 학원에 속하지 않더라도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유명 컨설턴트는 시간당 100만원 이상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사교육 업체들은 전체 사교육 시장에서 입시 컨설팅이 차지하는 비율이 작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서 이투스청솔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자체 조사 결과 입시 컨설팅 시장 규모는 40억∼50억원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나 입시 컨설턴트가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하기 때문에 실제 시장 규모는 그 이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수도권 일대에 체인점을 둔 유명 논술학원에서 2005∼2008년 논술 강사로 일한 오모(32)씨. 그는 “컨설팅은 강의 패키지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논술이 부족하다, 자기소개서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상담하다 보면 ‘본 게임’인 강의까지 가게 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오씨는 입시 컨설팅을 점집에 비유했다. “강사는 우선 학부모, 학생들과의 ‘기 싸움’에서 이겨야 해요. 특목고 다니는 애들이 오면 기를 죽일 만한 ‘스펙’을 내놔요. ‘너보다 월등히 실력 뛰어난 애가 서울대 어떤 과에 지원했다. 네가 서울대 갈 확률은 낮다’는 식이죠. 그럼 애들 자긍심이 확 줄어들고, 상품 팔기는 더 쉬워지는 겁니다. 대치동 고학력 엄마들이 이런 데 혹하는 이유요? 애가 볼모잖아요. 미션은 일류대고. 볼모와 미션만 있으면 못 할 게 없죠.” 그는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하향 지원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섬숙 KT에듀아이 비교과연구소장도 비슷한 사례를 들었다. “합격 못하면 돈 돌려준다는 업체도 있어요. 이런 데는 믿지 말아야 해요. 애가 350점 받으면 그 점수에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게 잘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업체들은 너무 낮게 원서를 쓰더라고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담 비용이 차이 나는 이유요? 점도 온라인으로 간접적으로 보는 거랑 오프라인으로 직접 볼 때랑 가격이 다르잖아요. 상담 시간도 짧게는 1시간이지만 길게는 2시간까지 걸리고요.”(이만기 유웨이중앙 평가이사)

모든 사교육 업체가 부정확한 정보를 준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고비용에 상응하는 상술로 입시 때마다 쉽게 돈을 버는 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교협이 경쟁에 뛰어들어 사교육에 의존해 온 입시 시장을 바로 잡고, 교사 중심의 진학 지도가 정착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대교협의 낙관처럼 쉽게 승기(勝機)를 잡을지는 미지수다. 강력한 카드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인 신뢰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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