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7) 신분 뒤에 감춘 지혜 기사의 사진

나무들 우거지고 계곡 물 흐르는 골짜기에 어부와 나무꾼이 보인다. 길쭉한 지겟다리 뒤로 땔감이 푸지다. 나무꾼은 등짐을 부리고 다리쉼을 한다. 낚싯대와 망태기, 삿갓을 앞에다 놓은 이는 어부다. 한갓진 얘기를 나누는 그들이 태평스럽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이 그림은 허술한 산골 풍경이 아니다. 나무하러 다니고 고기나 낚는 이들이 뭐 그리 대수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다. 옛 문헌에 나오는 어부와 나무꾼은 일쑤 고수다. 남루한 신분으로 지혜를 감춘 은자들이다. 어부 ‘漁(어)’ 자와 나무꾼 ‘樵(초)’ 자는 속 깊은 선비들의 호에 자주 나오는 돌림자다. 시쁘게 보다가 큰코다친다.

북송의 학자 소옹이 쓴 ‘어초문대(漁樵問對)’는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는 글이다. 그들의 입을 빌어 천지만물의 의리를 논한다. 말로써 말 많은 세상을 꾸짖는 대목도 있다. ‘군자는 행동이 말을 이기고 소인은 말이 행동을 이긴다.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망지(妄知)이고 입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망언(妄言)이니, 어찌 망인(妄人)을 따르겠는가.’

소설 삼국지의 서시에 나오는 어부와 나무꾼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들은 물보라처럼 스러진 전쟁영웅을 헛되이 여긴다. 그저 가을 달과 봄바람을 즐긴다. 한 잔의 탁주를 나누며 그들은 노래한다. ‘예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일 끊이지 않았지만/ 그 모두가 웃으며 하는 말에 부칠 따름.’

겸재는 물론 ‘어초문대’의 고사를 따라 그렸다. 속내평 모르면 심심한 노인네들의 대거리처럼 보일 그림이다. 좋은 음악은 반주가 귀찮고 깊은 그림은 핑계를 싫어한다. 속을 알아차려야 그림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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