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목숨 걸고 나라 지킨 탱자나무 기사의 사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살아온 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78, 79호인 인천시 강화도 갑곶리와 사기리의 탱자나무가 그런 나무다. 중국 중부 지역이 고향인 탱자나무는 오래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 경기도 이남 지방에서 울타리나무로 심어 키워졌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탱자나무는 바닷바람 차가운 서해의 섬, 강화도 지역에서 자라기에는 쉽지 않다.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를 지키기 위해 탱자나무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강화도에 뿌리를 내린 건 1627년 정묘호란 때였다. 청나라의 갑작스런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조선의 조정은 고려 때 산성이 남아있는 강화도로 피신해야 했다. 그리고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토성 바깥쪽 벽에 줄지어 탱자나무를 심었다. 줄기와 가지에 억센 가시가 무성한 탱자나무로 이루어진 생울타리는 제아무리 재주 좋은 도둑도 넘을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온전히 자라기는커녕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기후였기에, 사람들은 탱자나무를 더 정성껏 보살폈다. 나무도 나라를 지켜야 하는 사람의 간절함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꿋꿋이 살아 성벽을 지켜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강화도의 기후는 탱자나무가 버티기에 추운 날씨였다. 안간힘을 다해 성벽을 지키던 탱자나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 둘 시들어 죽었다. 섬 전역의 토성 외벽에 골고루 심었던 탱자나무 가운데 겨우 두 그루만이 살아남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추운 곳까지 출정했던 두 그루의 탱자나무는 그로부터 400년을 살아남으며, 탱자나무가 살 수 있는 북쪽 한계 지역을 넓힌 결과를 남겼다. 나라를 지켜낸 나무라는 의미뿐 아니라 식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됐다. 기후 변동이 심한 최근에 이르러 강화도보다 북쪽에서 탱자나무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던 1962년에 강화도는 탱자나무 생존의 한계였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식물 고유의 한계까지 극복한 결과다.

지금 갑곶리와 사기리 탱자나무는 살아온 고난의 400년 세월이 버겁다는 듯 줄기가 부러지고 뜯긴 형상으로 살아있다. 하지만 그 나무줄기에 새겨진 상처는 생존의 한계를 극복하며 나라의 평화를 지킨 증거이므로 귀중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서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중국에서 들어온 탱자나무가 살아온 생명의 안간힘이 소중하고 절박하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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