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확전과 응징 기사의 사진

“쿠바 미사일위기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강한 의지와 유연한 협상력을 보여줬다”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자가 지난주 청와대에서 모의 청문회를 갖고 군기강과 분위기 쇄신을 위한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확전(擴戰)자제’ 지시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군에서 확전은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전 규칙은 전면전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확전 자제가 국지적 공격에 대한 응징의 강도를 제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라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국제정치와 군사 분야에서 말하는 확전의 개념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전문용어로서 확전은 무기와 병력 동원을 확대해 공격 강도를 높인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제한적인 무력 충돌이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이어져 끝내 핵전쟁까지 유발하는 공포의 사다리를 지칭한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는 가급적 무모한 확전을 방지해 전쟁의 참화를 피해야 하고 만에 하나 국가안보와 이익을 위해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단계별 통제 수단을 동원해 핵전쟁과 같은 대재앙을 예방해야 할 책무가 있다. 국방장관 내정자가 우물쭈물 피하지 않고 확전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은 믿음직하다.

청와대는 ‘확전자제’ 논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이 잘못 전달됐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청와대 참모진이 섣부른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X자식들…이 참에 청소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여론도 북한의 무자비한 포격에 대한 반격이 미흡했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확전자제’ 메시지가 틀린 선택이 아니었다는 옹호도 있지만 국민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멀게 들린다.

1962년 10월 발생한 쿠바 미사일위기는 지도자의 특성과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쿠바 피그만 침공 실패로 위신이 추락했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관련 부품과 자재를 선박으로 운송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결단을 내렸다. 정보당국이 수집한 사진과 증거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소련이 끝내 쿠바 미사일 기지를 완공하겠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여 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케네디 정부는 해상봉쇄와 쿠바 침공계획은 물론 소련 본토 핵공격을 포함한 전면전 계획까지 수립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에 미국민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세계적 핵전쟁의 위험도 높아졌다. 하지만 미·소 양국이 정면 충돌 위험으로 치닫는 순간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정상 간 비밀협상이 추진됐다. 제안과 역제안이 오가는 비밀협상을 통해 미국은 쿠바 불침공과 터키 및 이탈리아 배치 미사일 철수를 약속하고 소련은 선박을 회항시켜 쿠바 미사일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위기는 풀렸다. 케네디 대통령이 피그만 사건 등으로 실추된 명예의 회복을 노려 정치적 목적으로 쿠바 위기를 이용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지도자의 위기관리능력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다.

남북이 대치하는 긴장 속에서 ‘확전자제’는 대통령이 1차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전략적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천안함 피폭에 이어 연평도가 포격을 받아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한 상황에서 전략적 선택과 협상의 여지를 두는 듯한 발언보다는 먼저 군사적 대응의 수위를 높여 강력한 응징 의지를 과시하는 게 중요했다. 북한도 익히 짐작하고 있는 우리의 ‘확전자제’ 선택은 일단 효과적인 보복 공격을 가하고 난 다음에 고려해도 늦지 않은 목표다.

북의 선제공격을 확실히 응징하려면 성능이 뛰어난 첨단무기와 훈련된 병력은 기본이고 신속한 보고 및 지휘 체계와 명확한 지침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다 기강이 바로 설 때 군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숨가쁘게 전개되는 교전 상황에서도 상대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채널과 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평화는 우세한 군사력에 엄격한 통제 시스템, 대외 협상력과 외교, 국민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유지될 수 있다.

김성기편집인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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