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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가뎡잡지(상동청년학원, 1906년 6월 창간)

[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가뎡잡지(상동청년학원, 1906년 6월 창간) 기사의 사진

‘가뎡잡지’는 1906년 6월 25일 상동청년학원에서 창간한 한국 최초의 여성 잡지이다. 발행 간격은 월간이고 체재는 순한글 세로쓰기이다. 상동청년학원은 상동교회(서울 남창동) 안에 조직된 상동청년회에서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1904년 설립한 학교이다. 잡지의 편집 겸 발행인은 유일선, 사장은 유성준, 편집 교정을 맡은 ‘교보원’은 주시경 김병현, 후원해 준 ‘찬성원’은 장지연 여병현 노병선 이준 양기탁 등이다.



이 잡지는 창간 후부터 1907년 1월까지 7호까지 내고 휴간하였다가 1908년 1월 새로 속간되었다. 이때 신채호가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고, 발행소도 ‘상동청년학원 가뎡잡지사’에서 ‘광학서포’로 바뀌었지만 인적 구성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찬성원’에 안창호 최광옥 정운복 이종호 안종화 등이 추가로 들어갔다. 주요 필자로는 유일선 주시경 전덕기 양기탁 노병선 신채호 등이 있다.

이처럼 개화기의 젊은 선각자들이 대거 잡지 발간에 참여하였다. 말하자면 잡지사가 국민계몽과 민족독립에 뜻을 세운 이들의 집합소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잡지의 발간 목적은 창간호에 잘 나타나 있다. ‘고금 충효의 본받을 만한 일과 지금 내외국의 본받을 만하고 중계할 만한 소문들과 또 논설과 평론과 국문 산술 역사 지리 등 가정교육에 유익할 만한 과정과 또 다른 여러 가지 재미있고 유익한 말들을 기록하여 가뎡잡지라 이름하고 출간합니다.’

이것은 ‘가정을 이롭게 다스려 문명한 사회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는’ 데에서 나온 취지이다. 당시 ‘황성신문’(1906년 6월 29일)에서도 잡지 창간을 알리며 구독을 권유하는 글을 실었다.

‘동서양 고금에 어진 사람의 행적과 어진 부인의 자식 교훈하던 일과 살림살이하는 사적을 기록하고 또 신학문의 긴요한 사상을 논술하여 누구든지 사보게 되면 첫째 자녀 교육하는 데 필요할 것이오, 또 부인의 덕행이 양성되어 부부간 화락하는 도와 심지어 의복·음식 만드는 학문과 집안 일용사물의 당한 일을 차례로 기재하여 가정에 유익한 일이 무수할지니 어찌 사회상에 다행이 아니리오.’

잡지 속간을 맡은 신채호도 발행인으로서 각오를 새롭게 밝혔다. ‘이 잡지가 가정교육의 목탁이 되어 전국 이천만 동포 가정의 변혁을 일으키고, 문명한 새 공기를 받아 새나라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합니다.’ 이 속간사는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민족주의 사상가 신채호의 소망과 포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뎡잡지’는 상동교회와 관계된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잡지이지만, 기사 중에 기독교를 다룬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중심에는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만인평등론, 특히 남녀 평등사상이 자리 잡고 있어 여성잡지로서의 모범적인 역할을 선구적으로 해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축첩제도를 비판하고, 여성을 배려하는 새로운 부부상을 제시한다. 또한 이 잡지가 지향하는 것은 여성 개인의 해방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한 기초, 곧 국가의 가장 중요한 단위로서 가정을 살리고 키우는 일이다. 이것은 ‘가정이 정돈된 후에야 국가가 정돈되고 국가가 정돈된 후에야 세계가 정돈된다’는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유교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사상과도 같은 입장이다.

따라서 이 잡지는 가정문제나 여성의 역할, 자녀 교육뿐만 아니라 국어 역사 지리 수학 과학 상식 평론 등 신학문 전반을 다루며 국민계몽에 앞장섰다. 특히 주시경은 이 잡지에 국문을 연재하며 한글전용을 외쳤고, 한글의 가치와 원리를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밝혀냄으로써 국어학의 발달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부길만 교수 (동원대 광고편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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