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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박현동] 연평도 비극과 사이버戰

[데스크시각-박현동] 연평도 비극과 사이버戰 기사의 사진

전쟁이 터졌다. 다시 입대하라고 한다. ‘제대 26년이나 됐는데 또 입대라니…. 전쟁이 터졌다고, 설마’라고 생각했다. 꿈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며칠 전 일이었다. 가끔 전쟁 꿈을 꾼다. 군에 갔다 온 남자들 중에는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더러 있을게다. 제대한 지가 언젠데, 더욱이 전쟁세대도 아닌데 전쟁 꿈을 꾸다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연평도 비극이 떠오른다.

집이 무너지고 산이 불탄 건 그렇다 치자. 꿈을 피우지도 못한 청년들이 죽어갔고, 민간인들도 포탄에 숨졌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어떤 위로나 보상도 이 비극을 지울 수는 없다. 20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졸지에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며, 가족을 위해 돈벌이 나갔던 예순 넘은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픔 또한 말해 무엇하랴.

이 엄청난 슬픔을, 이 엄청난 비극을 두고도 우리 사회는 사이버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다. 엉뚱하게도 ‘여자가 군을 알아?’라는 성별 논쟁에 유언비어까지 끼어들었다. 전쟁터는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그 기반은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메신저 등이다.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평양에 미사일 공격을 하자는 주장과 북한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정부 책임론으로 나눠 격론을 벌였다. 치열하다. 포성이 들리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는 점이 연평도와 다를 뿐이다.

정치인도 가세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우리 군의 호국훈련에 자극받은 북한이 포공격을 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연평도 사태 원인제공자가 우리 군이라는 논리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불 탄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말했다. 맞장구친 황진하 의원은 포병 여단장 출신이다. 세 사람 모두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도 네티즌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일부 유언비어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이명박 정권의 자작극’ ‘예비군 징집명령 발동’ 같은 얼토당토않은 루머를 사이버에 퍼뜨리는 자들은 또한 누구인가. 어떤 트위터리언(트위터 하는 사람)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폭격 장면을 북한군의 연평도 폭격장면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이들은 ‘재미삼아’ 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다. 설사 악의(惡意)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회적 동요와 불안심리를 부추기려는 북한의 노림수에 걸려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적행위다.

이건 또 뭔가. ‘김정은 대장님…’ 운운하며 북한의 포격을 찬양하는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라는 인터넷 카페까지 생겨났다. 이뿐 아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가 낸 성명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골자는 이렇다. ‘이명박은 미국과 작당해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고, 연평도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 역시 이명박의 대북 군사위협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성명으로 착각할 정도다. 설마라는 생각이 든다면 문제의 성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의 무자비한 포격으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국민이 죽어 가는데도 ‘평화체제’ 운운하는 세력은 진정 이 땅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인가? ‘평화’를 가장하는 모습은 가증스럽다. 현 정부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버림받은 사랑의 병적 증오심을 닮은 듯하다. 반대로 ‘평화’라는 말만 꺼내도 용공으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과연 정상인가?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가 악용당하고, 배척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념논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논리싸움이 아니라 ‘빨갱이’ ‘수구꼴통’ 운운하며 색깔론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논쟁이 이런 식으로 흐르고, 확산될 경우 우리가 얻게 될 것은 무엇일까? 그야말로 국론분열이요, 적전분열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은 ‘CEO, 역사에서 묻다’라는 책에서 “공동체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을 방치하는 것은 파멸을 부른다”고 경고했다. 천안함 사태 때도 그랬지만 사이버 내전이 위험스럽다.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이 그러했던 것처럼….

박현동 인터넷뉴스부장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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