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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정수익] 과거의 상처

[삶의 향기-정수익] 과거의 상처 기사의 사진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울했다. 오래전 실직과 가정의 분열을 겪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그는 지금까지도 자책과 원망을 떨쳐내지 못한 듯했다. 이젠 좀 아물 때가 된 것 같은데, 참 지독한 상처다. 속사정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 질긴 상처다. 아무리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모진 상처다. 그 친구만 떠올리면 측은하고 가슴이 무거워진다.

문득 얼마 전 TV에서 본 한 사람이 생각난다. ‘세상에 이럴 수가’라는 프로그램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은 데 이어 딸까지 잃고서 10년 넘게 과거를 붙들고 사는 사람이었다.

친구와 TV 속 그 사람의 심정, 십분 이해된다. 무시로 찾아드는 상실감, 공허감, 허탈감 등이 오죽했을까. 왜 분노가 일지 않고, 애착이 생기지 않겠나 가슴 한 구석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아픔과 슬픔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렵겠는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 못 돌려

그러면서도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자신들의 감정을 애써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집착으로 바꾼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자기연민에 매몰돼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딱지를 훈장처럼 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가정 문제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갖가지 상처로 얼룩진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 인생길을 가다보면 누구든 실패와 좌절을 겪고, 예기치 않은 불행을 만날 수 있다. 시달림과 스트레스, 다툼, 배신, 오해, 편견 등 상처의 조건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꿋꿋이 살아간다. 상처받을 당시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당히 잊고, 남는 건 추억의 창고에 밀어 넣는다. 과거의 상처는 결코 훈장이 아니다. 그건 인생길의 짐밖에 되지 않는다. 짐은 줄일수록 좋다.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하는 인생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낑낑대다간 낙오하기 십상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럴 바에는 과거의 상처 따위는 기억에서 털어내는 게 현명하다. 물론 마음 바꾸기가 TV 채널 돌리는 것처럼 쉽진 않을 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그러고 보니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두 해병의 부모들이 떠오른다. 잘 키운 아들을 졸지에 잃고서 얻은 상처가 그들의 가슴 깊이 파고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그분께 맡기면 변화 시작된다

이럴 때를 위해 예비된 분이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다.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를 그분께 맡기면 그분은 일하기 시작하신다. 우리의 죄와 질고를 지고 우리의 비통함을 대신 당하신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시달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애통해하는 자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기 위해 오셨다고 스스로 밝히셨다. 다섯 남자와 이혼하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던 여인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예수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

2010년이 서서히 저문다. 가는 해와 더불어 지난날 입었던 상처를 털어내자.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힘든 짐을 그분께 내려놓고 환하게 웃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연평도 전사자 부모들에게 성경 한 구절을 전하고 싶다.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소중한 것 상실해도 절망하지 않으며,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시 50:23)

정수익 종교부장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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