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승만 (27) 김일성 “어릴적 어머니 따라 칠골교회 다녔다”

[역경의 열매] 이승만 (27) 김일성 “어릴적 어머니 따라 칠골교회 다녔다” 기사의 사진

1983년 내가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 아시아 지역 총무로 있을 때 남·북 장로교회가 통합하는 경사가 있었다. 남북전쟁 이후 123년간 갈라져 있던 교회가 하나가 된 것이다. 나는 이 통합의 의미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총회 여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첫 통합 총회가 열리는 날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특별 선언을 채택하자”고 설득했다.

“한반도 분단은 미국과 소련에 역사적 책임이 있습니다. 결자해지하려면 미국이 한반도 화해와 통일에 기여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장로교회는 100년 전 한국에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한반도에 화해의 복음을 전해주는 데 앞장섭시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차츰 동의해 선언서가 나오게 됐다. 북한 선교와 한민족 화해에 대한 미국교회의 책임을 확인하고, 남북 1000만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가 나설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총회 석상에서 선언서가 채택되려는 찰나 방청석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초청된 한국 장로교단 대표들에게서 완강한 반대가 터져나온 것이다. “이 성명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내용이 아닙니까!” 이에 잠시 술렁임도 있었지만 성명 자체는 압도적 지지 속에 채택됐다.

91년 11월에는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에 당선됐다. 35개 기독교단과 5000만명의 교인이 속한 종교계 최대 기관의 대표직에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으로서도 처음 오른 것이다. 이취임 예배 때 나는 남북한 교회 대표를 초청했다. 서울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인 구세군 김성환 사관이, 평양에서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고기준 목사를 비롯해 세 명이 참석했다.

이런 사역들로 나는 고국 교회로부터 ‘친북인사’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내가 한 일이 아니고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일이라고 확신한다.

다음 해인 92년 8월 미국교회협의회 대표 15명과 남·북한을 동시 방문했을 때의 일은 두고두고 ‘친북’ 이미지를 더 공고히 해줬다.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난 것이다. 김 주석은 미국교회 대표가 조선인이라는 데 대해 놀라고 자랑스러워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계속 힘써 달라”고 말했다. 대표단과의 만찬 때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칠골교회를 다닌 일, 청년 시절 만주에서 일본경찰에 잡혔을 때 감리교 목사님이 석방을 위해 힘써줬다는 등의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우리 대표단과 김 주석의 면담은 당시 북한의 중앙방송TV는 물론이고 미국 언론에도 일제히 보도됐다. 1주일 후인 22일에는 미국교회협의회와 조그련 대표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미국과 북한 두 나라 기독교인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데 협력해 나가자”는 내용이었다.

이런 사역 가운데 나는 비난의 장벽을 숱하게 넘어야 했다. 나는 늘 미국과 한국 두 정부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었다. 한국 방문 때마다 안기부 직원들이 내 숙소 앞을 지켰다. 그래도 심한 제지나 간섭을 받지 않은 것은 미국 장로교회, 또는 미국교회협의회 내의 직책 덕분이었다. 교단 내에서도 역경은 있었다. 97년에 교단 신문 중 하나가 나를 ‘북한의 앞잡이’로 보도했다. 92년 방북 때 김 주석과 찍은 단체사진이 내가 ‘공산주의자’라는 증거로 제시됐다. 총회 본부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해졌고 내게 갖가지 사임 압력이 들어왔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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