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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승만 (29·끝) 6·25 아픔이 일군 ‘화해와 평화의 목회’

[역경의 열매] 이승만 (29·끝) 6·25 아픔이 일군 ‘화해와 평화의 목회’ 기사의 사진

1995년은 내가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했을 때 ‘남북한 교회의 희년’으로 양쪽의 의견을 모았던 해였다. 그 뜻에 걸맞은 행사를 치르기 위해 고민한 끝에 미국장로교회 총회에 남북한 교회 대표를 초청하기로 했다.

남쪽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김기수 총회장과 한국기독교장로회 배야섭 총회장을, 북쪽에서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을 초청했다. 남북 분단 이래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성대하게 열린 총회 둘째날, 이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남북 대표에게 각각 긴 나무막대와 푸르고 붉은 긴 헝겊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대표들은 단상에 올라 나무를 겹치고 청홍색 끈을 묶어 십자가를 만들었다. 2000여명의 청중은 기립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남과 북에서 자란 나무가 하나로 엮여 십자가가 된 모습에 나도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나는 98년 미국장로교 선교부 부총무직을 마지막으로 25년의 사역을 마치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그리고 지금 몸담고 있는 유니온 신학교로 와 아시안목회선교센터를 세우고 후학들을 가르쳐 오고 있다.

2000년에는 미국장로교 총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렸던 212차 총회에서 나는 첫 번째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해 미국장로교 212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총회장이 됐다. 1만2000개 교회와 250만명의 교인을 가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단의 수장이 된 것이다. 이때 ‘뉴욕타임스’ ‘뉴스위크’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도 나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아버지를 공산당에게 잃고 가족이 이산하는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오히려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해 애써 왔다는 점이 조명을 받았다. 또한 미국사회 내 인종갈등, 교회 내 보혁대립 등을 치유하는 데 앞장선 ‘화해 목회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내년이면 살아온 세월이 80년이 된다. 그 사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태어나 자란 평양,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내일의 꿈을 꾸었던 한국, 그리고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 온 미국, 모두 내 조국이다. 그뿐 아니라 선교를 위해 수없이 방문했던 중동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 그 밖의 나라들도 결국은 다 내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다.

눈앞의 고난에 짓눌려 무엇을 기도할지조차 몰랐던 소년을 하나님은 한없이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셨다. 많은 것을 보여주셨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다.

세상은 참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전쟁 속에 아버지를 잃은 지 6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그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남과 북의 전쟁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그 속에서 또 누군가의 아들이, 아버지가, 가족이 목숨을 잃고 있다.

지난달 27일, 나는 두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그 앞에서 여러 단체들과 함께 반전 시위를 했다. 미국 정부에 “한반도를 전쟁 상황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우리의 목소리는 외신을 통해 세계 곳곳에 타전됐고 한국 신문에까지 게재됐다.

미국 내 한인사회에도 “북한을 확실히 응징해야 한다” “한·미 공조를 더 공고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나서는 안 된다. 평화를 심어야 한다. 내가 일평생을 통해 배웠고 내 단 하나의 신념이 된 생각이 있다. 그것으로 이 긴 이야기를 끝맺고 싶다. “하나님은 화해와 평화를 원하십니다. 화해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애쓰고 손해보고 양보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마지막 주의 시간이 올 때까지 화해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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