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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의구] 제3의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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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24일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프랑스 하원 연단에 섰다. 한 해 전 총선에서 18년간 집권하던 보수당에 압승을 거두고 43세의 나이로 총리가 된 블레어는 ‘제3의 길’을 주창했다. 이데올로기는 종식됐고, 좌·우가 아니라 좋고 나쁜 길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21세기에는 자유방임주의와 국가통제 경제정책을 결합하고 좌·우파의 이념적 카테고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실용주의 노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 블레어의 모토는 진보진영 내부 반발을 부르기도 했지만 이후 13년간 계속된 노동당 집권의 길을 열었다. ‘제3의 길’은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확산돼 21세기 첫 10년간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가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에 새로운 대북 정책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위기 상황이 평화와 안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을 포괄하는 정책을 요구한다는 제언이었다. 새 대북 정책의 방향성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들은 ‘제3의 대북 정책’이란 제목을 붙였다. 2000년대 이전 정권의 ‘승공(勝共)·멸공(滅共)식 정책’과 국민 및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에 이은 또 다른 대북 정책이란 의미다. 현 정부의 ‘압박식 대북 정책’의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들어 야권에서도 대북 정책의 방향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달 30일 방송기자클럽에서 “햇볕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7일에는 “우리는 동서 해빙체제 속에서 2000년 6·15, 2007년에는 10·4 선언을 만들었다”며 “그러나 오늘 와서 보면 이 자체도 안정된 새로운 동북아체제가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기존 대북 정책 기조를 발전적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의 발언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6·15와 10·4 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평화적 통일에 관한 남북 정상의 합의로,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이 불안정하고 잘못된 것이라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이냐”며 “6·15와 10·4는 한 점, 한 획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최고는 이어 “6·15와 10·4를 계속 해왔다면 연평도 사태는 없었고 한반도는 평화체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포용정책은 민주당으로서는 정체성이요 뿌리 자체인데, 이걸 폄하하거나 부정한다면 민주당을 부정하는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정 최고의 발언은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한나라당과의 대립각을 분명히 하는 노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 북한의 도발은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제2차 연평해전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이 열리는 날 북의 도발로 시작됐다. 같은 해 북한은 2차 핵 위기를 일으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7월과 9월에는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까지 자행했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런 반성에서 출발했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이념이 특정 정치집단의 소유물일 수는 없다. 이념은 시대상황과 당대의 정신에 따라 유동하는 것이며, 정당의 정체성도 바뀔 수 있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조차 정강·정책에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명시하고 있다.

대북 정책의 정립이 어려운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이란 존재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외세에 의해 분단됐지만 언젠가는 재결합해야 할 동포이자, 극명하게 다른 이념으로 나뉘어 살아가는 ‘현존하는 위협’이기도 하다. 존재가 이중적이니 정책도 이중성을 가지는 게 오히려 온당할지도 모른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정치세력 편가름이나 이념의 순정성을 고집하기보다 시대를 관통하는 열린 해법을 찾으려는 자세가 중요해 보인다. 섣부른 결론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제3, 제4의 길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김의구 정치부장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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