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공존의 지혜를 가진 나무 기사의 사진

숲의 생명체들은 서로 어울리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모든 생명들이 생존을 위해 날선 투쟁을 벌인다. 특히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나무들의 투쟁은 매우 치열하다.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나무는 생명을 잃게 된다. 나무들 사이에는 그래서 거리가 필요하다. 공존을 위한 거리다. 무성한 숲에서 사는 나무들이 홀로 서있는 나무에 비해 수명이 짧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남 장흥군 삼산리 후박나무는 나무가 어떻게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곳에 사람들이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던 400여년 전에 심은 이 나무는 11m쯤 되는 키에 사방으로 23m 넘게 가지를 펼친 크고 아름다운 나무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를 살펴보면 놀랍고 재미있는 사실이 드러난다. 얼핏 잘 다듬어 키운 한 그루처럼 보이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바짝 붙어서 자란 세 그루의 나무다. 줄기 둘레로 봐서는 비슷한 나이의 나무이건만 세 그루는 제가끔 다른 모습으로 자랐다.

옆으로 가지를 펼칠 공간이 모자랐던 지 나무는 위로만 가지를 뻗어 올렸다. 반면 옆에 있는 다른 두 그루 나무는 바깥쪽으로 가지를 펼쳤고, 가운데 나무만큼 키를 키우지 않았다. 결국 세 그루 나무가 마치 솜씨 좋은 조경사의 손길을 거친 한 그루의 나무처럼 아름다운 반원형을 이뤘다.

나무는 분명히 생존을 위해 경쟁을 벌이지만, 가까이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와 함께 사는 법을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적당한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한 결과다. 하나의 생명이 400년 넘게 아름다움을 유지해 사람들로부터 귀하게 여겨지고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공존공영의 지혜인 셈이다.

공존의 지혜를 보여주는 건 삼산리 후박나무만이 아니다. 모든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조건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다른 생명체가 생명을 잃으면 자신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가는 식물이건만, 그 안에는 공존을 위한 지혜와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는 것이다.

배려는커녕 도무지 타협과 양보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는 요즘 세상살이를 바라보자니, 나무가 보여주는 공존의 지혜가 더 없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계절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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