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이런 국회 필요한가 기사의 사진

이보다 더 생생한 격투기가 없다.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목을 조르는 것은 예사이고, 온몸을 던지는 육탄전도 불사한다. 조폭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다.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매년 세밑이면 벌어지는 풍경이다. 주연은 우리가 낸 세금만 연봉 1억원 이상씩 챙겨가는 국회의원님들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야 국회의원들은 4대강 예산삭감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다 ‘폭력 국회’를 연출했다. 2008년부터 내리 3년째다. 달라진 점은 크랭크인 시점이 12월 31일 마지막 날이 아니라 8일로 앞당겨졌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이 폭행을 하거나 욕을 하면 철창행이지만 금배지 국회의원들에겐 ‘영광의 상처’요, 다음 선거에서의 ‘보증수표’다.

한나라당이 3분도 채 안 돼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는 와중에도 ‘형님’을 비롯한 실세 의원들은 출신 지역구 예산을 알뜰하게 챙겼다. 같은 날 미국 하원은 본회의에서 1조1000억 달러 규모의 2011 회계연도 정부지출 잠정안을 의결하면서 의원들이 요청한 4만건의 이어마크(earmark·지역구의 선심성 예산안)를 전액 삭감했다는 소식이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상임위원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된 양육수당 확대, 영유아 예방접종비 등을 내년 최종 예산에서 빠뜨려 야당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섰고 복지예산 누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물러났지만 예산안을 둘러싼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애써 만들어낸 내년도 세제 개편안도 엉망이 되긴 마찬가지다. 이익단체들의 로비에 아예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누더기가 돼 버렸다. 친서민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소득세 감세안 철회를 외쳤던 여야가 변호사 회계사 등 연간 5억원 이상 고소득층의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 도입하려던 세무검증제도는 무산시켜버렸다. 고소득층들이 주로 거래하는 6000만원 이상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 부과도 2년 유예했다. 로비의 결과물이다. 지방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된 지방 소재 골프장에 대한 개별소비세 면제 혜택을 2년 연장하려던 것도 수도권 골프장들의 로비에 부닥쳐 무산됐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기획재정부의 폐지 의사가 워낙 강해 내년부터는 사라지는 듯했다.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말 그대로 ‘임시’로 도입했던 제도가 18년간이나 지속돼 왔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려 했다. 그러나 재계 반발에 부닥쳐 내년에도 또다시 연장됐다. 대신 도입하려던 고용창출투자세액 공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재정부 예산실과 세제실 직원들은 매년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을 만들기 위해 몇 달 동안 새벽에 퇴근하기 일쑤다. 이들에게 휴가나 주말은 아예 없다. 지난 추석에도 예산실 직원들은 연휴를 다 못 쉬고, 추석 당일 하루만 쉬었다. 연말이면 예산안 통과를 기다리며 국회 본회의장 밖에 있는 의자에서 신문지를 덮고 ‘쪽잠’을 자곤 한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맞이 등도 이들에겐 딴 나라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겐 대부분 성인에게서 사라진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이 밤잠 못 자면서 만들어낸 세제개편안과 예산안을 제대로 심의도 하지 않고 이익단체들의 로비 때문에, 단지 표를 위해서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도 되는 걸까.

여야 의원들이 똘똘 뭉쳐 한마음을 보여준 것도 있다. 국회의원 세비(歲費) 5.1% 인상안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지난달 2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슬쩍 통과된 데 이어 8일 폭력 사태 속에서도 본회의를 그대로 통과했다. 우리가 낸 혈세로 의원들이 받아가는 세비는 1억1300만원에서 1억1870만원으로 올랐다. 국민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행정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입법기관이 ‘잿밥’에만 신경 쓴다면 이런 국회가 필요할까.

이명희 경제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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