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갈등을 치유해야 할 종교가… 기사의 사진

1948년 5월 31일 오후 2시, 지금은 경복궁으로 복원된 중앙청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은 기독교식 기도로 시작됐다. 정동제일교회 장로였던 임시의장 이승만 박사가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라고 우리는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며 의원들의 동의를 구했다. 감리교 목사인 이윤형 의원은 의원들이 기립한 가운데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종교 갈등이 없었던 나라

제헌 헌법 초안에도 지금의 헌법과 마찬가지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조항이 분명 있었다. 또 제헌 의원 중에는 타 종교를 가진 이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고, 국민들의 종교 분포를 봐도 불교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국가 행사를 기독교식으로 시작하는데 큰 물의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 대한민국이 태생부터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하자는 게 아니다. 그만큼 종교 간 갈등이 없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불교계와 현 정권의 갈등이 날로 도를 더해간다. 여야는 당초 내년도 템플스테이 예산을 185억원으로 증액한다는 데 합의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단독처리하면서 합의안을 미처 반영하지 못해 그 예산이 122억원으로 삭감돼 버렸다. 조계종은 현 정부의 템플스테이 지원을 거부할 것이며,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여권 인사들의 사찰 출입도 금지키로 하는가 하면 정권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불교계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이번 템플스테이 예산이 뇌관 역할을 했으나 사실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누적돼 왔다. 독실한 기독교 장로인 이 대통령 본인은 종교적 색깔을 내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으나 불교도들에겐 그의 언행과 현 정부의 일부 정책들이 종교 편파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른가를 가릴 생각은 없다. 기자가 그럴 만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설령 그런 식견이 있다고 해도, 정치와 종교 얘기는 식탁 위에 올리지 말라는 충고처럼, 그래봤자 논란을 키울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 놔두면 재앙 될 수도

다만 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종교 갈등이 불러올 재앙에 대한 걱정뿐이다. 지금 이미 그 초기단계에 들어와 있지만 종교 갈등이

정치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두렵다. 이대로 가다간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모든 선거와 국정 운영이 종교 간, 특히 기독교와 불교 간 대립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리 될 경우 국론 분열과 그에 따른 국력 낭비 등 폐단은 지금도 겪고 있는 지역 갈등이나 좌우 이념 대립에 비할 바 아닐 것이다. 종교 간 갈등으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테러 등 폭력, 심지어 전쟁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그러한 공포가 기우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종교가 맡은 가장 중요한 소명 중 하나가 사회의 갈등을 풀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거꾸로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주체가 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종교마다 절대자와 구원에 대한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일에 종교 간 일치가 이뤄질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3·1 독립선언문의 33인 서명자들은 모두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 각 종교의 대표들이었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절박한 명제 앞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 종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일치를 보여준 본보기다.

종교 간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갈등이나 이념 갈등보다 훨씬 심각한 국가의 앞날과 직결된 문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 지도자들은 종교적 신념과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구국적 차원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불교계의 감정이 격해 있는 지금은 어렵겠지만 냉각기를 가진 뒤 이 대통령이 종교 지도자들과 모임을 갖고 갈등 해소 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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