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남해를 지키는 이순신 나무 기사의 사진

서울의 중심을 지키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40일의 병가(病暇)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올 채비를 마쳤다. 서울의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국토의 남쪽 바다를 지켜온 ‘이순신 나무’도 있다. 경남 남해도 인근 작은 섬 창선도의 대벽리 단항마을 바닷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다. 단항마을은 통영 한산도에서부터 여수에 이르는 한려수도의 중간쯤으로, 이순신 장군이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곳이다.

용왕이 보낸 씨앗에서 싹을 틔웠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창선도 후박나무는 키가 8m밖에 안 되지만 나뭇가지는 동서로 21.2m, 남북으로 18.3m에 이를 정도로 넓게 퍼졌다. 웅장한 규모의 이 나무는 500년을 살아온 것으로 추측되는 노거수다.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연륜은 푸른 이끼가 잔뜩 얹혀진 줄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가운데 가장 굵은 줄기는 오래전에 부러졌는데, 그 자리에는 나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려 애쓴 흔적이 울퉁불퉁한 혹으로 남았다. 가운데가 비었지만, 11개로 갈라지며 우렁차게 솟아오른 다른 굵은 줄기의 모습은 나무에 웅장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 밑둥치 부분의 둘레는 무려 11m에 이른다.

‘이순신 나무’라는 위풍당당한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정유재란(1597)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 때 이 마을에서 벌인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기습 공격으로 배 400척을 잃고 퇴각하던 왜군은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잠시 단항마을에 잠복하던 이순신 장군은 마을 주위에 무성하게 숲을 이룬 대나무를 이용해 왜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장군은 작은 배에 대나무를 가득 쌓고 불을 질렀다. 불이 붙자 대나무는 마디가 터지면서 마치 대포를 쏘는 듯한 큰 소리를 냈다. 이순신 함대의 동정을 엿보던 왜군은 끝없이 이어지는 포성에 주눅이 들어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장군의 지혜 덕분에 병사들은 전열을 정비하고 소진했던 전투력을 충전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장군이 병사들과 함께 쉬었던 자리가 이 후박나무 그늘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그늘로 푸짐한 먹을거리를 내놓으며 장군을 성원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후박나무에는 ‘이순신 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다. 용왕의 전설보다 이순신 장군의 신화를 더 귀하게 여긴 건 당연한 일이다.

더불어 나무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도운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남았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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