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0) 살자고 삼키다 붙잡히고 기사의 사진

물고기 두 마리가 꿰미에 묶여있다. 아가리를 벌린 놈은 등에 얼룩이 있고 살이 올랐다. 곁에 새끼도 덩치만 작지 닮은 꼴이다. 둘 다 쏘가리다. 매운탕거리로 으뜸인 쏘가리는 먹성 좋고 오동통해 별명이 ‘물(水)돼지’다. 그림조차 먹음직스럽다.

그러면 쏘가리는 무슨 이유로 그릴까. 모양이 아니라 이름 때문에 그린다. 한자로 ‘궐어’가 쏘가리다. 이름에 ‘궐’이 들어가서 대궐의 ‘궐(闕)’ 자가 이내 떠오른다. 쏘가리를 그리면 입궐하라는 얘기다. 임금 계시는 대궐에서 벼슬아치가 되는 것, 그게 쏘가리 그림의 속뜻이다. 이 그림처럼 쏘가리를 묶어놓으면? 벼슬을 꽉 잡아두라는 신신당부다.

여기까지는 다 좋다. 두 마리를 그린 게 탈이다. 대궐이 두 개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임금도 둘이라는 말 아닌가. 그림 뜻을 따라가자면 자칫 모반죄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를 판이다. 그린 이는 조선 말기의 허련이다. 추사 제자인 그는 영특하고 충직했다. 모르지는 않았을 테다. 다만 시대가 그림의 가외 뜻까지 꼬치꼬치 따지지 않던 때라 그냥 넘어갔다.

필치는 능숙하다. 붓놀림에서 형태를 간략히 잡아낸 감각이 넘친다. 모반 따위는 제쳐두자. 볼작시면 입이 꿰인 쏘가리가 처량하다. 저것이 무슨 꼴인가. 벼슬하는 자의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 아닌가. 놀고먹는 벼슬 없고 주워 먹는 봉급 없다. 밥을 벌어먹는 자의 운명이 미끼를 삼킨 쏘가리와 저토록 닮았다.

소설가 김훈이 일찌감치 썼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아, 사는 게 낚이는 거로고.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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