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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고승욱] 검찰, 내년에는

[데스크시각-고승욱] 검찰, 내년에는 기사의 사진

“신뢰받고 존경받지 못하면 공정사회를 만드는 중심에 설 수 없고, 국가발전에 큰 저해요소가 된다.” “검찰이라는 조직은 외부의 변화에 느리게 적응하는 조직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 1년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검찰이 됐으면 좋겠다.”

지난 20일 법무부 업무보고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에 당부한 말이다. 물론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윤리성, 도덕성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검찰과 법무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검찰에 보내는 강한 메시지가 읽힌다. 이 대통령은 검찰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초보적인 단계’이고,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 제자리에 있으면 ‘후퇴’로 인식된다고 했다. ‘피나는 노력’이라는 말은 두 번이나 나왔다.

대통령이 법무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최근 몇 달 동안 검찰 수사 기사가 신문 1면을 자주 장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숨진 뒤 중단했던 수사를 재개한 대검 중수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관련자를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한화그룹과 태광그룹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서부지검, 입법로비 의혹을 캐낸 서울북부지검 등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의욕과 달리 대부분 수사가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였다. 중수부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썼다는 소리를 들었다. 요란하게 시작된 태광그룹 수사는 어쩐 일인지 잠복해 버렸다. 한화그룹 수사에서는 검찰 스스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먼지털이식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가장 큰 논란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었다. 압수수색 타이밍을 놓친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서둘러 끝낸 수사결과를 놓고 국민들은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봤다고 생각했다. 야당은 연일 새로운 증거를 들이대며 공세를 벌였지만 검찰의 반박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랜저 검사’라는 악재도 있었다.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임검사의 수사결과 발표는 검찰의 자정능력마저 의심케 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대한 신뢰가 또 떨어졌다. 이제는 법을 어기고 반칙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국회의원들은 아예 법을 바꾸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신뢰받지 못하면 공정사회를 만드는 중심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정의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올해 베스트셀러는 단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다. 송년회에서는 정의의 여신 이야기가 꼭 나온다. 최근 TV 드라마에서 감찰조사를 받고 옷을 벗은 검사가 검찰청사 안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울며 검사 선서를 외치는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검이나 서울중앙지검 청사 로비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없다. 드라마의 설정일 뿐이다.

그래도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정의를 지키려면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교훈을 되새겼다. 권력자이든 서민이든, 재벌이든 노숙인이든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이유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칼, 검찰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법은 정의롭다고 믿는 것이다.

지난해 8월 20일 김준규 검찰총장이 취임식을 가졌다. 임채진 총장이 자진사퇴하고 두 달 넘게 지나서였다. 당시 김 총장은 변화를 강조했다. “수사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정정당당하고 세련된 수사가 돼야 한다. 수사는 신사답게, 페어플레이 정신 그리고 명예와 배려를 소중히 하자.” 검찰총장이 선두에 서서 검찰은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아직 신뢰를 얻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김 총장이 취임한 지 1년 4개월이 지난 뒤 대통령은 검찰에 변화를 다시 주문했다. 그동안 검찰은 변화하지 못한 것일까. 내년에는 검찰은 바뀔 수 있을까.

고승욱 사회부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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