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성훈] 성탄 준비하셨습니까 기사의 사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런던 외곽의 농촌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농가에 들러 우산 하나만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농부는 별 생각 없이 우산 중에서 가장 낡아빠진 것을 내 주었고, 그 사람들은 주인인 듯한 어느 여인에게 씌워주는 것이었다. 다음 날 그 우산은 편지와 함께 농부에게 배달되었는데, 편지에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인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농가에서 낡아빠진 우산을 빌려 쓰고 간 사람은 다름 아닌 엘리자베스 여왕이었던 것이다. 편지를 받아본 농부는 그분께 가장 좋은 우산을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높은 자리 좋아하면 비극 시작

이와 동일한 사건이 2000년 전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아니 온 인류의 왕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을 때 일어났다. 다름 아닌 헤롯이라고 하는 왕에 의해서다. 그는 유대인으로 로마를 위해 몸을 던졌던 폭군 중 폭군이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헤롯왕이 보여준 반응에 대해 국어 성경은 ‘소동’이라 표현했다. 이 말은 본래 마음이 심히 혼란스러워 공포 가운데 발칵 뒤집어진 것을 의미한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은 유대인 왕의 자리, 또한 유대 땅 최고 책임자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권력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온 백성이 기뻐하는 성탄을 두 살 이하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살인으로 맞이하였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음을 보게 하는 대목이다.

송명희 시인의 시 가운데 ‘나는 황제보다 하인이 부럽습니다’란 제목의 시가 있다. ‘나는 섬김을 받는 황제보다 섬기는 하인이 더 부럽습니다…. 나는 왕비의 가마보다 걸어 다니는 평민의 다리가 더 좋습니다’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한결같이 왕이 되고 싶어한다는 데 있다. 모두가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속성, 그리고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는 데서부터 인간의 비극은 시작한다. 사실 헤롯왕의 사건은 소중한 것 모두 희생하며 세상을 얻어 보려고, 꼭대기라고 여기는 자리에 앉아서 영원히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곱씹어 보노라면, 나 외에 나를 다스리고 간섭할 다른 왕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내가 헤롯왕이 되어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의 계획에 있어 나 스스로가 나의 헤롯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어떤 대학, 무슨 과에 갈 것인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지, 돈을 어떻게 벌고 관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 것인지 등의 모든 계획을 나 스스로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신앙을 가지고 있든 혹은 그렇지 않든, 인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누가 나의 왕이 될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주위에는 많이 있는 것 같다. 성탄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 만날 절호의 기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제부터 주님 외에 다른 것을 왕으로 삼지 않으며, 나 중심의 사고에서 주님 중심으로 사고의 축을 바꾸어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오셨는데,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진 이들이 그분을 만나지 못하는 비극적인 실수가 다시는 없어야겠다. 우리 모두 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2010 성탄절을 맞아 한번 되짚어 보고 싶다.

이성훈 남부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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