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1) 날 겁쟁이라 부르지 마 기사의 사진

산토끼 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누런 흙빛을 띤 몸통에 검은 반점이 촘촘하다. 귀는 쫑긋이 세우고 눈은 두리번거린다. 엇갈리게 앉은 한 놈은 고개 돌려 뒤를 돌아보고, 등을 봉긋하게 세운 한 놈은 곧 뜀박질하려는 자세다. 둘 다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빨간 눈 휘둥그런 토끼는 애처로울 만치 선량한 짐승이다. 설화에 나오는 토끼는 헌신과 희생을 안다. 배고픈 이를 위해 제 몸을 불 속에 던져 먹잇감으로 내준 미담이 있는가 하면, 옥토끼는 장생불로의 선약을 짓기 위해 방아질을 멈추지 않는다는 민담도 있다. 때로는 꾀보 노릇도 한다. ‘별주부전’에 나온 토끼는 자라를 골려먹는다.

화가는 19세기 인물인 마군후다. 그는 사뭇 다른 이미지의 토끼를 그렸다. 그림 속 화제가 실마리다. 풀이해보자. ‘한낮에 삼족오와 마주보고 놀았으니/ 달에서 사냥개가 안들 무엇이 두려우랴’. 이게 무슨 말일까. 태양에 사는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까마귀다. 삼족오는 해의 상징이다. 토끼는 알다시피 달의 정령이다.

토끼는 해에서 양기를 받고 달에서 음기를 비춘다. 그 음양의 기운으로 토끼는 장수한다. 달 속의 토끼는 무병(無病)이라고 옛 문헌은 전한다. 마군후가 그린 토끼는 소곳한 겁쟁이가 아니라 사냥개조차 우습게 보는 열쌘 존재다. 그래선지 야생의 당당함이 풍기는 토끼다.

토끼 눈은 밝아서 ‘명시(明視)’라 한다. 다가오는 신년이 토끼해다. 눈 똑바로 뜨고 새뜻하게 해를 맞자.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지만 두 마리 토끼인들 못 잡으란 법이 있겠는가. 밝은 눈, 잽싼 다리!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