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엄동설한에 피어난 비파나무꽃 기사의 사진

어김없이 바람 찬 겨울이면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열매가 중국의 현악기인 비파를 닮았다 해서 비파나무라는 우아한 이름을 가진 나무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지방에서는 흔하게 심어 키우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비파나무에 지금 꽃이 한창이다.

비파나무는 잘 자라봐야 10m 정도까지밖에 자라지 않는 아담한 크기의 나무여서 정원에서 키우기에 알맞춤하다. 싱그럽게 돋아나는 길쭉한 잎이 겨우내 떨어지지 않고 정원의 푸름을 유지해주는 상록성 나무라는 것도 정원수로 환영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도 키우기 좋은 특징이다. 씨앗을 따로 구하지 않고, 열매를 먹고 남은 씨앗으로도 싹을 틔울 수 있을 정도다. 토양의 조건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비파나무는 4년쯤 자라면 열매를 보는 즐거움까지 준다.

11월쯤 피어나는 비파나무의 꽃은 첫눈이 내린 뒤까지 계속 피어난다. 꽃송이 바깥쪽의 꽃받침은 연한 갈색의 보송보송한 솜털 옷을 입었다. 보기만 해도 온기가 느껴지는 두툼한 방한복이다. 작고 여린 꽃송이가 겨울 추위를 이겨내려는 절절한 안간힘이지 싶다.

다섯 장의 우윳빛 꽃잎으로 피어나는 비파나무의 꽃은 지름 1㎝ 정도로 작을 뿐 아니라, 화려하지도 않다. 그나마 가지 끝에서 여러 송이의 꽃이 원뿔형으로 빽빽하게 모여 피어나기 때문에 눈길을 끌 뿐이다. 그러나 꽃이 흔치 않은 계절이어서 일단 피어나기만 하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은은한 향기까지 담고 있어서 겨울 정원의 주인공 자격은 충분히 갖추었지 싶다.

꽃이 지면 비파나무는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다른 식물들이 찬란한 꽃을 피우는 삼복더위에 완전히 익는다. 열매는 탐스러운 달걀 모양으로 성글게 모여 달리는데, 작은 것은 3㎝쯤 되지만, 큰 것은 7㎝가 넘기도 한다. 질박한 우윳빛 꽃과 달리 열매는 여름 꽃들에 뒤질세라 노란색에서 청동색까지 화려한 빛깔을 가졌다.

새콤달콤한 맛의 열매는 그냥 먹어도 좋고, 술을 담가먹기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약재로 긴하게 쓰였다. 열매와 함께 비파나무의 잎도 약재로 쓰였는데, ‘비파나무를 키우는 집안에는 환자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효가 탁월하다. 심지어 항암 작용까지 한다고 한다. 비파나무의 속살에 담긴 이 같은 놀라운 효과는 엄동설한에 꽃을 피우며 살아남은 생명의 강인함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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