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너덜너덜 민족학 기사의 사진

“도발에 대한 응징 필연성은 확보됐다. 동족 전쟁 가능해진 수치를 극복해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내외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내부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그래도 한 핏줄이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부분 북한과 함께 갈 수 없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인양된 천안함의 잔해를 기억할 것이다. 수중폭발로 두 동강이 난 1200t급 초계함이 서해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의 민족학은 부숴진 천안함 모습 그대로 너덜너덜의 수준으로 격하되고 말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온정이 가신 그 자리엔 전쟁의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그제 한밤의 눈 내리던 시간에 천둥 치는 소리를 듣고 전쟁이 일어난 줄 알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외부적 변화는 한국이 국제적으로 비주요국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전쟁은 주요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여전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 몇 방으로 이 고요는 끝나가고 있다.

26일자 워싱턴 포스트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유사 상황에 대비했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많은 외신들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세계인들의 생각에 한국은 전쟁이 불가능한 주요국가가 아니라 전쟁 가능성이 높은 비주요국가라고 인식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민족학의 수치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전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도발해오면 근원지까지 철저히 응징한다는 것은 구호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쟁에 대비한 원칙이나 세부 실천항목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 어떻게 전쟁을 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 가장 진지한 성찰은 성 어거스틴(354∼430)이 신앙에 입각해 기술한 ‘의로운 전쟁(Just War)’ 이론이 손꼽히고 있다. 어거스틴은 합법적인 권력은 하늘에서 부여한 것이라고 보고, 이 합법적 권력은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할 경우는 정의롭게 실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전쟁을 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엄격한 룰을 요구한다. 어거스틴의 이론을 1999년 코소보전쟁 당시 버드지스제우스키 텍사스대 교수(정치철학)가 정리한 것이 ‘의로운 전쟁의 7대원칙’이다.

그 원칙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전쟁 선포자의 공적 권위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이유 △경제부흥 등의 의도가 아닌 평화를 위한 전쟁 △적군을 죽이는 행위(kill)가 아니라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살해(murder) 금지 △계획보다 더 잔혹한 결과를 가져올 전략 시행 금지 △목표(승리)를 달성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 △평화적 대안이 소진됐을 때 등의 7대 조건이 전부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성한 전쟁(Holy War)’을 이야기하는 세력도 있지만 신성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단지 ‘의로운 전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가 이런 룰을 지키지 않는 데 있다.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는 이런 룰을 무시한다. 9·11테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들은 무고한 양민을 타깃으로 하고 군사 시설물보다는 공공의 빌딩을 목표로 한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최대한의 피해이지 전쟁의 의로움이 아니다.

북한의 도발은 명백히 이와 같은 룰을 무시한 것이다. 마지막 조건인 ‘평화적 대안이 소진됐는가’ 여부는 좀 더 가려봐야 하겠지만, 아주 엄격하다는 성 어거스틴의 이론에 비춰보더라도 도발에 대한 응징의 필연성은 확보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바로 여기서 숙고해야 할 점이 있을 것이다. 동족 전쟁이 다시 또 가능해진 한반도의 수치를 어떻게 사전에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부에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싶다.

임순만 수석 논설위원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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