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용섭] 나고야로 끌려간 소녀들 기사의 사진

‘일제 강제병합 100년, 해방 65년’이 되는 경인년 한 해도 무심히 저물고 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중노동을 하다 돌아온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노쇠하고 병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일제 피해자 문제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한다. 6개월 전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일제 피해자 문제에 천착하게 되면서 올해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보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실이 없어 착잡한 마음 이를 데 없다. 발 벗고 나서줘야 할 정부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두 주 전에는 일제 피해자 문제 해결책을 논의하는 ‘한·일 변호사 심포지엄’에 초청돼 일본에 다녀왔다. 행사에는 태평양전쟁유족회 회원 100여명이 소복을 입고 참석해서 자리를 지켰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국민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변호사들까지 나섰는데, 정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무실이 지척이고,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는데도 말이다. 답답했다. 그러나 이것이 ‘공정사회’와 ‘친서민’을 외치는 우리 정부의 현주소다.

정부가 앞장서 문제 풀어라

웬일인지 정부는 일제 피해자 문제엔 도통 관심이 없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쓰비시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간의 보상 협상도 일본 나고야 시민단체인 ‘소송지원회’의 10년이 넘는 노력과 우리 ‘시민모임’의 끊임없는 투쟁, 그리고 국민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지속적인 보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지난 8일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예산안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일제 때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 사망한 한국인들의 유골 실태조사 예산까지 통째로 날려 버렸다. 사업비는 고작 6억8000만원이었다. 남편 또는 아버지의 묘를 찾을 꿈에 부풀어 있던 유족들의 분노와 충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일제피해자 문제 해결에 지금처럼 호기(好機)가 없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중이고,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 내에도 ‘전후보상을 생각하는 의원연맹’이 결성돼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우리 정부의 관심만 더해진다면 의외로 쉽게 매듭이 풀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물론이고, 광복 65주년 기념사에서조차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달 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을 통해 “시간이 없습니다. 피해자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해결해야 합니다. 이분들의 눈물도 닦아드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공정한 사회’를 논할 수 있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직까지도 정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일제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의 미불임금, 후생연금 탈퇴수당, 사할린 우편저금, 유골 봉환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받은 청구권 자금을 산업화의 종잣돈으로 사용했으면 이제 이만큼 살게 됐으니 피해자들에게 보상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여야 관련법 통과시켜야

조선왕실의궤와 같은 문화재 반환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 문제 해결이다. 어려울 것 없다. 바로 내 부모, 형제자매의 아픔이라 여기고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줘야 한다. 전후 보상이나 피해자 문제 해결에 있어 왜 우리 정부는 프랑스나 중국 정부처럼 당당하지 못한가. 국회도 현재 계류 중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안’ 등 관련 법안들의 조기 통과에 여야 없이 나서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과 언론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도 꼭 강조하고 싶다.

이용섭 국회의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