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인격 학살당한 일제시대 문인들 기사의 사진

“국가가 나서서 억울한 친일파도 양산했다. 역사를 독점해 자화자찬하면 안돼”

일제시대 할아버지가 판사였던 친구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학시절 학장은 일제시대 고시에 합격하고 벼슬을 지냈다고 자랑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친일반민족행위를 자랑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던 최남선 김동인 노천명 백철 서정주 이광수 정비석 주요한 채만식을 위원회는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다. 내가 속아왔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정책을 지지하는 그들의 글이 아직도 명확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은 면제됐다. 일본 군수성 고급관리였던 국무총리도 빠졌다. 일본헌병이나 경찰의 앞잡이들도 피해나갔다. 위원회의 조사 책임자 한 사람은 내게 그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친일을 한 것이니까 봐준 것이라고 했다. 법을 만든 여당대표나 의원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헌병과 경찰의 앞잡이였다고 했었다.

역사청산의 거창한 명분과는 달리 글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문인이나 언론인들만 상당수 희생양이 된 것 같다. 그런 속에서도 친일의 글을 남겼던 사회주의 지도자 여운형 같은 분은 제외됐다. 투쟁적 공로가 다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억울한 보통사람들도 봤다. 비좁은 밭뙈기 하나 있는 가난한 사람이 그 땅을 위원회에 빼앗겼다. 딸들만 남은 몰락한 집안의 묘지가 국고귀속처분을 받는 걸 목격했다. 그들은 돈이 없어 소송을 제기하지도 못했다. 사실 소송도 의미 없는 묘한 법이다. 인생 전체의 공과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한 순간만 포착한다는 게 법조문이었다. 평생을 수절하다가 단 한번 실수를 저질렀다면 화냥년이었다. 강간당한 여부를 따질 것 없다고 했다. 남편에 비유할 지켜주지 못한 나라의 책임은 없었다. 이상한 법이다.

그림을 한 조각만 찢어서 보면 생명력이 없다. 소설도 한 페이지만 가지고 평가하는 건 난센스다. 인생도 전체를 봐야 제대로 해석이 된다. 창녀 막달라마리아도 참회하고 성녀가 됐다. 성경 속의 세리도 배신한 베드로도 모두 최고의 성인이 됐다. 우리는 거꾸로였다. 나름대로 애쓰며 살려던 인생들의 한순간만 떼어내어 그들을 학살해 버렸다. 재판도 무의미했다. 인생의 검은 한 조각만 떼어 법대에 샘플로 올리고 현미경 같은 판사에게 그게 검으냐 희냐를 구별하라는 식이다. 정신병자가 아니고는 그걸 희다고 할 판사가 없다. 그래서 판사들 중에서도 그 법이 이상하다고 위헌제청을 한 사람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공청회 등 민주절차를 밟았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공청회기록을 몇 번이나 정독했다. 토론자 거의 다가 위헌을 경고했다.

위원회가 마음만 먹으면 전 국민을 친일파로 몰아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관이 아닌 위원회가 어떻게 인격형벌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의 낙인을 찍을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치열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감정적인 국민여론에 편승해서 악법을 밀어붙였다. 그 속에서 탄생한 전권을 가진 위원회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해방 후 설치된 반민특위의 조사관들은 모두 독립투쟁경력을 가진 강성인물로 그 신분이 투명하게 공개됐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서 탄생한 위원회의 조사관들은 신원이 비밀에 부쳐졌고 어떤 법적책임에도 면죄부가 부여됐다. 정보공개를 신청해도 거부됐다. 위원들도 두 종류였다. 양쪽을 모두 만나 보았다. 한쪽은 파쇼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이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는 구조론에 입각해 있었다. 친미파에 대해서도 앞으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견들이 다수인 것 같았다. 소수파인 다른 한쪽은 의견이 달랐다. 일제전쟁기에 노동을 하라고 하면 근육의 힘을 내놓아야 했고 돈을 내놓으라면 돈을 내놓고 글쟁이는 글을 공출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했다.

또 사람마다 다양한 사상을 가질 수 있는 걸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투쟁의식만 가지고 재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억울한 친일파도 양산했다. 역사를 독점하고 혼자만 정의라는 독선으로 자화자찬하듯이 과연 청산이 됐을까.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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