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기사의 사진

지난 12월 말 일본 혼슈 남서부에 있는 시마네현 곳곳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 한 재단의 배려로 치산치수 현장을 살피는 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기초자치단체의 실핏줄 같은 행정망이 한눈에 보였다. 마을마다 설치된 커뮤니케이션센터는 대민 봉사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다. 우리의 주민센터와 같은 기능이라고 보면 되는데 일본의 시설과 프로그램이 우리보단 앞서는 편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세대에게 소니 워크맨으로 상징되는 일본이라는 아이콘은 매력적인 브랜드가 아닐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 교육 문제 취재로 일본의 한 대학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리사이클링 전문가’라고 답했다. 우리에겐 개념조차 생소해 알아듣기 힘든 분야였다. 또 한 교육NGO 대표를 만났을 때 ‘히키고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일본 사회의 위험 신호로 꼽았다. 그리고 1∼2년이 지나자 우리나라에서도 쓰레기 분리수거가 실시되고 ‘왕따’가 사회문제로 표면화되는 걸 보면서 일본이 롤 모델은 아니어도 분명 어느 부분 우리가 배워야 하는 선진국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데 요즘은 일본을 방문해도 매료될 일이 별로 없다. 우리의 생활수준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현지 쇼핑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이라 굳이 그곳에서 구입할 일이 없다. 다만 이 같은 자부심은 경쟁심의 발로이지 실제 국민소득과 같은 기초체력에선 우리가 10년 이상 뒤지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무형의 자산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그들에게 사오고 싶은 무형의 자산이 눈에 띄었다. 어디를 가도 따라붙는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마을의 취수정이 됐건, 보(洑)가 됐건, 저수지가 됐건 어느 것 하나에도 스토리가 부여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판 만화 인터넷 영상 등의 콘텐츠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의미를 갖고 사람을 끌었다. 스토리의 사실(Fact) 여부는 두 번째 문제다.

80년대 시작된 정보통신(IT)혁명 이후 우리 사회는 디지털융합, 스마트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지식기반사회의 성숙기를 맞고 있다. 이 융합과 혁명의 기반이 스토리이다. 우리의 지난 30년은 한국 IT 역사의 황금기였다. 이 시기를 거쳐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출 46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산업화 시대의 초기인 60년대 국민소득 100달러, 수출 1억 달러와 비교하면 가슴 뭉클할 뿐이다.

2011년. 한국 사회는 또 다른 30년을 준비해야 할 첫해로 보인다. 지난 30년이 기술 중심의 정보 혁명이었다면 앞으로는 언어와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정보혁명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언어 능력은 외국어능력과 같이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유연한 발상과 사고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말한다.

말에는 생명에너지 있어야

언어는 모든 존재, 체험, 사상의 집이라고 했다. 특히 지식기반사회에서 언어의 힘은 각 개인의 궁극적인 능력과 같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우리의 이야기, 즉 말에는 생명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스토리가 ‘죽임의 말’이라면 복음(福音)이 될 수 없다. 사람이 타락하는 것은 말이 타락하는 것이고, 이는 곧 말 속에 있는 유연한 발상의 능력이 파괴되는 것(야고보서 3:6)을 뜻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란 말씀은 그래서 진리다.

새해가 되면 서로에게 축복의 기도를 하게 된다. 예수 안에서 살도록 기도하고 재물과 스펙을 달라고 소원하기도 한다. 생명에너지의 언어로 30년을 준비할 첫날이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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