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2) 누리 가득 새날 새 빛 기사의 사진

새해에 보고픈 그림이다. 오른쪽 산등성이 너머로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 멀리와 가까이 중중첩첩한 연봉에 뾰족한 수목과 훤칠한 소나무, 위쪽은 대궐처럼 으리으리하고 고래 등처럼 솟은 전각, 아래쪽은 야트막히 자리 잡은 고즈넉한 민가, 그리고 대문 밖으로 해맞이하러 나온 다정한 할아버지와 손자….

조선 중기 화원 유성업의 작품은 서기가 감돌고 희망이 넘친다.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누리에 가득해 가슴이 벅찬 그림이다. 한마디로, 세상을 그렸으되 세상에 보기 힘든 풍경이라고 할까. 소망은 멀수록 간절하고 향수는 가까울수록 애타니, 화가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펼쳐놓고 그리움을 달랜다.

해가 떠야 해(年)가 바뀐다. 새날의 해는 첫 아침을 연다. 그 기백은 여느 날과 다르다. 송 태조 조광윤은 원단의 해를 느껍게 노래한다. ‘처음 떠오른 해는 빛이 눈부셔/ 이 산 저 산에 불을 붙이고/ 둥글고 재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뭇별과 조각달 모조리 쫓아버리네’ 해와 달과 별이 ‘삼광(三光)’인데, 달과 별은 어둠을 거느리고 해는 어둠을 물리친다.

해 돋는 동해로 새해 인파가 어김없이 몰린다. 미망을 떨치고 희망을 좇으려는 염원이다. 새해는 무얼 일깨우는가. 저 먼 춘추시대부터 내려온 이야기다. 제후가 맹인에게 묻는다. “일흔 나이에 배우는 것은 늦은가?” 맹인이 답한다. “어려서 배우는 것은 떠오르는 햇빛과 같고, 커서 배우는 것은 한낮의 햇빛과 같다. 그대는 촛불이라도 켜라. 빛이 있으니 어둠 속을 가는 것에 비기랴.” 해가 뜬다. 더욱이 가장 빛나는 새 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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