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급성 정치언어경화증 기사의 사진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새해 인사차 당사로 찾아온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호되게 몰아세웠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대통령의 메시지도 없이 여기를 뭐 하러 왔느냐”고 호통을 친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털리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지난달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폭행시비를 빚은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에게 이 대통령이 격려전화를 한 것을 언급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세배객에게 호통친 야당대표

물론 야당 정치인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고 할 법한 말이다. 문제는 야당 대표의 언사라는 데 있다. 말에 너무 날이 섰다. 대표적 정치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갖는지를 모를 리 없다.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시쳇말로 ‘튀는 어투’를 구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다. 왜 점잖고, 품격 있는 표현으로 은근하면서도 그 울림이 크고 오래가도록 말하지 못할까.

대통령의 심부름으로 세배를 간 사람이다. 속으로 맺힌 게 있더라도 세시풍속인 만큼 그냥 받아주면 된다. 나이가 훨씬 아래인 사람이니 덕담이라도 좀 해주고. 대통령에게 따로 전할 말은 세배객이 돌아갈 때 점잖으면서도 뼈있는 메시지에 담아서 보낼 수도 있었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면 애초에 거절할 일이었다.

그런데 손 대표는 아무 말 않고 일단 방안에 들인 다음, 중인환시리에 호통을 쳤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 비서 야단치면 정치적 위상이 올라간다고 여겼을까. 그렇게 하면 자신의 투쟁성이 좀 더 뚜렷이 부각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을까. 정치란 원래 이처럼 몰인정하고 야멸치고 차가운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정치학자로서의 소신이어서일까.

정치언어가 급격히 경화되고 있다. 말하자면 ‘급성 정치언어경화’ 증세다. 정치인들은 대수롭잖게, 때로는 의기양양하게 구사하지만 기실 아주 심각한 질병이다. 빨리 치유하지 않으면 정치를 천박함, 상스러움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만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서나 언어구사 능력, 심하게는 문화까지도 경화시킬 수 있다. ‘말’이 가진, 사람의 사람다운 생각 정서 의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퇴화하고 증오 저주 투지의 감정을 쏟아내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확장 강화되는 것이다.

품격 있는 말하기 모범 보여야

손 대표는 정치인이면서 정치학자이기도 하다. 당연히 정치언어 순화에 모범을 보여야 할 입장에 있다. 그런데도 갈수록 말이 거칠어지는 것 같아서 ‘남보다 더 심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사례로 삼는 것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세배에 호통으로 응대했다고 해서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손 대표 화법이 일상적 정치언어로 굳어질까봐 걱정스럽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 권력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였을 때 그 손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손이 됐다.”(작년 11월 긴급의원총회 발언)

과거엔 행동이나 말에서 이른바 ‘소총수’ ‘저격병’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리더들이 직접 나서고 있다. 소장의원들이 그 역할을 거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민주당의 천정배 의원도 언어 경화증 악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이명박 정부 소탕해야 하지 않겠나. 끌어내리자.” “헛소리하며 국민을 실망시키는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해야 하나.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

작년 12월 26일 수원역 앞에서 장외투쟁을 벌이며 한 말이다.

하긴 민주당 지도급 인사들의 언사만을 탓할 일은 아니겠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더 찾는다더라”고 했다가 혼찌검이 났다. 12월 22일, 하필이면 장애인 아동 시설을 방문한 후, 여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런 한심한 말을 했다고 보도됐다.

독한 말이나 비속한 말이나 정치를 퇴화시키는 데는 난형난제다. 정치판에서 지성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제부터라도 정치지도자들이 정치언어 순화 운동을 앞장서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의 불쾌지수 하락, 행복지수 상승을 위해!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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