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3) 헤어진 여인의 뒷모습 기사의 사진

너덜너덜한 벽 해묵은 기와집. 담벼락 샛길로 여인이 걸어간다. 얼굴 보이지 않으려고 머리에 처네를 썼다. 옥색 치마가 겅둥해 속바지가 나왔다. 분홍신은 어여쁘고 작달막한 키, 펑퍼짐한 엉덩이는 수더분하다. 요즘 여자의 몸매와 달리 나부죽한, 천생 조선 아낙이다.

뒷모습여서일까, 어쩐지 처연한 느낌이다. 낙관에 그린 때가 적혀 있다. ‘을축년 초가을에 혜원이 그리다.’ 을축은 1805년이고, 혜원은 신윤복의 호다. 도장에 새긴 글씨는 ‘입부(笠父)’다. 신윤복의 자(字)가 입부다. ‘삿갓 쓴 사내’가 ‘처네 쓴 여인’을 그린 셈이다. 그린 이도, 그려진 이도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이 또한 공교롭다.

헤어져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은 하냥 시름겹다. 이형기 시인이 읊기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지만, 그 아름다움은 차마 드러내지 못할 쓸쓸함의 반어다. 이별해 본 남녀는 안다. 뒷모습에서 속울음이 터져 나온다. 얼굴이야 기어코 돌리지 않는다. 하물며 저 여인의 사연은 가리개에 감춰져 있다.

석별의 길 아니라도 홀로 가는 길이 외롭다. 쓸쓸한 여인은 그러나 한편 사랑옵다. 달래어 위로하고픈 마음이 난다. 처네에 숨긴 그녀 얼굴, 동글반반할까 초강초강할까. 그림이라도 여인의 앞모습이 궁금타. 청나라 시인 진초남은 못내 호기심을 품은 모양이다. ‘등 돌린 미인 난간에 기대네/ 섭섭해라, 꽃다운 얼굴 안 보여/ 불러봐도 돌아서지 않으니/ 어리석게도 그림 뒤집어서 본다네.’ 아서라 말자. 얼룩진 눈물자국 보이면 더욱 안타까우리.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