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에 일반 쌀 아닌 특정 품종 있었다… 부여 구아리 유적터 발굴 목간 내용 공개 기사의 사진

지난해 10월, 충남 부여읍 구아리 부여중앙성결교회 증축공사 시행 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적터에서 다수의 목간(木簡: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과 폐기장 등으로 보이는 희귀한 유적들이 발견됐다. 앞서 3∼4월 부여 쌍북리 119센터 신축부지 내 유적지에서는 목간과 함께 완전한 형태의 목재 신발도 발견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청계천로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이 때 발견된 유적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복수의 쌀 품종 증거 발견=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심상육 연구원이 부여중앙성결교회 유적지 출토 목간에 대해 보고하던 중,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목간에서 ‘적미(赤米)’라는 두 글자가 학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목간의 원본 사진에서는 글자의 형태가 희미했으나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는 뚜렷이 드러났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20여명의 학자들은 저마다 “‘적미’란 글자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흥분했다.

학자들이 ‘적미’ 두 글자에 주목한 건 단지 ‘쌀’이 아닌 ‘적미’라고 불린 쌀의 특정한 종류가 백제시대에 존재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적미’가 있었다면 다른 쌀도 있었을 터, 이는 당시 농경발전 수준을 알려주는 귀중한 증거로 평가됐다. 삼국시대 어디에서도 이 같은 자료가 확인된 적은 없었다. 동국대 고고학과 윤선태 교수는 “쌀 품종과 관련된 사료는 그동안 전무했다”며 “일본에서는 쌀 품종과 관련된 다수의 유적이 발견된 적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목간에 쓰인 글자는 ‘태공서미전부(太公西美前部) 적미이석(赤米二石)’인 것으로 추측됐으나 몇몇 글자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적미이석’ 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학계에서는 목간이 완전히 해독되면 당시 농경 및 사회 발전 수준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서기 6∼7세기 쯤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교회 터에서는 백제 사비성 시대의 폐기장 터와 화장실로 보이는 터가 발견됐다.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기생충 알이나 박 바가지, 일상생활용기인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그릇, 짚신과 나막신, 중국제 청자벼루과 토기류 등이 발견돼 유적지의 성격을 가늠케 했다. 옛 사비성 도심지에서 화장실터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함께 출토된 다른 목간들에서는 백제의 행정구역 명칭인 5부와 백제 인명, 관등명, 네 글자씩 끊어 써 시로 추정되는 문구 등이 다양하게 발견됐다.

◇백제 사람들이 마약했다고? 그럴 리가=지난해 4월 부여 쌍북리 119센터 신축부지에서 ‘五石九十斤’이라 적힌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이 출토돼 백제인들이 마약의 일종인 ‘오석산(五石散)’을 복용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라 나왔으나,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했다. 목간 촬영 사진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문제의 ‘오석’은 옥석(玉石)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오’ 혹은 ‘옥’ 자의 가운데 획의 굵기와 점이 찍힌 위치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오석산은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신비의 명약으로 중국 육조시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단사(丹砂)·웅황(雄黃)·백반(白礬)·증청(曾靑)·자석(磁石) 등 다섯 종류의 광물질로 만들었다. 4월 목간 출토 당시 서예학자인 손환일 선생은 목간의 묵서명을 ‘五石九十斤(오석구십근)’이라 판독해 ‘백제인이 마약을 복용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그러나 학자들은 첫 번째 글자가 ‘오’자가 아님은 물론 가운데 글자는 ‘구’자가 아닌 ‘칠(七)’ 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목간의 묵서명이 내포하는 의미에 접근하려면 유적의 성격과 같이 출토된 유물들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동방문화재연구원 손호성 연구원의 지적이다. 쌍북리 119센터 유적지에서는 목간 외에도 공방지로 추정되는 벽주건물 터가 함께 발견됐기 때문에, 공방지라는 관련성 속에서 목간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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