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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수지 (13) 보스턴대 박사과정 첫 숙제 25점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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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남편은 인디애나대학교에서 학부 3학년 강의를 맡아 가르치게 됐다. 장학금을 받으며 박사과정 공부를 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야간대학을 나온 지 2년 만에 미국 대학교에서 전공과목을 강의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남편은 2년7개월 만에 박사과정을 끝내고 보스턴에 있는 MIT대학의 연구원으로 가게 됐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인디애나에 살면서 블루밍턴 병원의 수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1975년 7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기쁜 소식이 있어요.”

남편이 간호학의 명문인 보스턴대학에 가서 나의 박사학위 과정을 알아봤는데 학과장이 서류를 가져와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사과정은 이미 그해 4월에 원서 접수가 끝난 상태인 것을 아는 나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보스턴대학에서 9월 1일에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8월 말까지 일을 끝내고 곧장 가방을 챙겨 보스턴으로 갔다. 면접을 보기 위해 이튿날 학교에 갔는데, 단순한 면접이 아니라 ‘입학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정신과 교수가 먼저 내게 “정신과 간호학의 최근 경향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다. 그 내용은 바로 얼마 전에 내가 블루밍턴 병원에서 강의한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답을 잘했겠는가! 나의 대답에 교수는 입을 딱 벌렸다.

“오케이(OK)!”

두 번째 교수가 질문했다.

“당신은 이 공부를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어요?”

일단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자 자신감이 생겨서 나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인터뷰는 연구방법론을 가르치는 사회학 교수였다.

“유사실험(Quasi-Experimental) 연구 설계에 대해 설명하고 그 예를 들어보세요.”

퀘자이(Quasi)라고 하는 영어 발음조차 생소했던 나는 당황했다. 나는 교수에게 부탁했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으니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그러자 교수는 신이 나서 30분이 넘도록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시험 보는 학생이 교수에게 설명을 요청하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입학 허가가 떨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석사학위는 인정할 수 없으니 석사과정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항의하자 “한 학기 동안 공부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학기 동안 잘하면 박사과정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죽으라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연세간호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던 안면이 있는 후배 학생이 이미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첫 번째 숙제가 나왔는데, 숙제의 의미 파악이 잘 안 돼서 고민 고민을 해가며 한 달 반 만에 숙제를 마쳤다. 그러나 채점한 것을 보니 온통 빨간 펜으로 고쳐져 있었고, 점수는 25점이었다. “아, 박사학위 과정은 할 수 없겠구나.”

페이퍼를 받아들고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박사 과정 중에 있는 후배 학생이 내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이번 숙제 몇 점 받으셨어요?”

“형편없어.”

그래도 명색이 한때 교수였는데 자존심이 상했다. 점수를 말해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꼬치꼬치 내 점수를 물었다.

“15점 받으셨어요?”

“더 높아.”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걱정하세요? 저는 12점 받았어요.”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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