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보온병 효과? 기사의 사진

“안상수 대표가 당을 위한다는 명분에 진정성 보이려면 거취에 결단 내려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여당 결의에 대해 청와대가 몹시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 후보자 사퇴로 기운 여론을 감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이, 더구나 안상수 대표가 앞장서서 사전조율조차 없이 사퇴를 들고 나올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제 조간신문에는 ‘한나라당 반란’ ‘黨靑갈등 증폭’ ‘보온병에 한 방 맞았다’는 제목들이 올라왔다.

인사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여당이 들고 나온 초유의 사퇴 요구가 이명박 정부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을 가시화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 후보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과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대통령의 측근 인물이어서 애당초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울러 대검 차장에서 이임한 뒤 법무법인에서 7개월간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야당은 재산형성 과정에 의혹을 제기해 사퇴 압박을 더했다.

최근 수도권을 비롯한 지역 민심이 흔들리는 현상을 피부로 감지하고 있는 여당 지도부는 후보자 논란에 따른 여론 악화까지 겹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처지에서 사퇴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여론 추이로 미뤄 인사청문회까지 간다 해도 본인 상처만 더 키울 뿐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안 대표가 앞장서서 반기를 들었다는 대목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안 대표는 여론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후보자 사퇴를 안건에 올렸다고 한다. 당 관계자들은 해외 출장 중인 김무성 원내대표에게는 전화를 통해 의견을 물어 전원 일치로 청와대에 사퇴 요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11일 귀국한 김 원내대표는 동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당에 불리하게 나타나고 있는 민심 동향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드러난 안보 불안과 국회 폭력 사태 등 정부와 여당의 실책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안 대표가 자초한 부분도 적지 않다.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에는 현지에서 ‘보온병 포탄’ 발언으로 비웃음을 사 병역미필 고위 공직자는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불을 지폈다. 또 여기자들과 가진 식사 모임에선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여성을 ‘자연산’으로 지칭한 여성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당내에서도 비판이 거세지자 앞으로 처신에 신중하겠다는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지만 당장 전당대회를 소집하기 어렵다는 당 안팎의 형편 때문에 눌러앉게 된 안 대표다.

이렇게 당 이미지에 먹칠을 한 안 대표가 주도해 당을 살려야 한다며 청와대에 사퇴 요구를 던진 것은 무언가 어설퍼 보인다. 그동안 구긴 체면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여당 대표가 거푸 사고치고 책임 떠넘기기에 나서는 고약한 모습을 연출해 놓고 어제는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유통업계에서도 롯데마트가 한 건 올리려다가 거푸 헛발질을 날려 빈축을 사고 있다. 롯데마트는 구제역 난리 속에 미국산 LA식 갈비를 할인 판매하는 ‘통큰 갈비’ 판촉 행사를 벌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나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랴부랴 한우 및 돼지고기 판촉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제역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육점 업계가 들고 일어나 영세 업체를 다 죽인다고 야단이다. 미국의 월마트는 저가 판매로 긍정과 부정적 평가가 교차하는 ‘월마트효과’라는 조어를 만들어냈지만 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롯데마트효과’는 부정적인 의미가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안 대표도 ‘보온병’ 발언 이후 체면을 만회하려고 한 언사들이 무리수로 쌓이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당을 위해서라는 정 후보자 사퇴요구 명분에 진정성을 갖추려면 주위 핑계를 대지 말고 스스로 당직에서 물러나는 결단부터 내려야 한다.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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