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열] 복지 논쟁이 말하지 않은 것 기사의 사진

“보편적 복지론엔 재정확충방안이 없고 선택적 복지론엔 확실한 대안이 없다”

미래 권력을 둘러싼 복지 논쟁이 뜨겁다. 연평도의 포연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행사를 치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쏘아올린 ‘맞춤형 복지’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무기였다. 이에 무상급식과 무상의료뿐 아니라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으로 응사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보편적 복지’는 본래 집권의 무게감에서 자유로운 진보 정당들의 단골메뉴였다.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고 시민투표를 제안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승부수는 조금은 진부한 ‘선택적 복지’다. 여야 간 자리이동뿐 아니라 여권 내 분화와 야권 내 이합집산이 자못 흥미롭다.

빈곤이나 실업과 같은 전통적인 위험에 더해 고령화와 세계화로 급격히 늘어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고려할 때 복지 논쟁이 대선의 전초전이 된 것은 때 이른 감이 있지만, 논쟁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복지예산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재정지출이 7.5%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9.3%에서 한참 밑도는 우리 현실에서 미래 복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더구나 세풍, 총풍, 병풍, 북풍 등의 온갖 바람을 이용한 근거 없는 감성적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날을 지새운 지난 선거들을 돌이켜보면 복지 논쟁은 여야 간, 차기 주자 간 정책 차별화로 유권자의 이성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지역감정과 가산관료(家産官僚)적 위계 속에 온존해온 한국 정당을 이념이 분명한 정책 정당으로 정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논쟁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불안하다. 먼저 고백하고 사과했어야 할 각 정당들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그동안 복지공약들은 늘 화려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여야가 뒤바뀌면 복지관도 돌변했다. 국민 신뢰를 잃은 정당들의 복지정책이 워낙 구색 갖추기다 보니 복지시스템의 일관성을 이만큼이라도 유지해 온 것은 관료 주도의 보험형, 시혜형 복지였다. 일본과 더불어 한국의 복지는 비스마르크형 체질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여야를 막론하고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방향성만 있고 구체적인 추진 전략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손 대표의 보편적 복지론에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복지 지출을 감당할 구체적 재정확충 방안이 없고, 오 시장의 선택적 복지론에는 점증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중산층에까지 확산된 불안감을 줄여줄 확실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적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결핍을 떠올리듯 박 의원의 ‘한국적 복지국가’는 복지 결핍을 연상케 한다.

최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내는 것에는 부정적이어서 매우 이중적이라고 한다. 결국 복지에 대한 재원이 부족하다면 국민들을 적극 설득해 세 부담을 늘리거나 복지의 범위를 축소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 활발한 소통, 그리고 설득의 정치력을 요한다.

보편적 복지의 이상형이라 꼽을 만한 북유럽 국가나 선택적 복지의 전형이라 할 영미권의 공통점은 현재 한국의 1인당 소득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었던 40∼50년 전에 이미 복지시스템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안정된 정치과정, 타협의 문화, 그리고 높은 시민의식이라는 소프트 파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지난 연말 국회 예산안 처리에서 선보인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나, 서울시 의회에서 무상급식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민주당의 행태는 숙의와 타협이 사라진 세 대결이란 점에서 닮은꼴이다.

투명한 절차와 타협이 뿌리내린 안정된 정치과정 없이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을까. 한국과 유사한 정치 체질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복지 지출을 늘려온 남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최근의 재정위기와 폭발적인 사회갈등은 복지 논쟁 이전에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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