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역경의 열매] 김수지 (20·끝) 62세에 다시 복지학 도전 “꿈은 영원히”

[역경의 열매] 김수지 (20·끝) 62세에  다시 복지학 도전 “꿈은 영원히” 기사의 사진

그러나 나는 끝까지 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복지센터 설립을 위해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학은 사람을 공부하지만 사회복지학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나 복지정책을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바쁜 관계로 일반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없어서 고민을 하던 중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서울사이버대학을 알게 됐다. 일반대학의 3분의 1에 불과한 등록금도 마음에 들었다.

2004년 3월 학기부터 이 대학에서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만 62세 때였다. 나는 학교 강의가 없는 토요일에 인터넷을 통해 하루 종일 공부하고 평일에는 저녁에 틈틈이 공부를 했다.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다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클릭해 강의를 멈춘 뒤 아이디어를 종합, 정리해 메모를 했다. 공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1년 동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 있는 동안에도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인공동생활가정도 사회복지학 숙제를 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다. 이렇게 해서 영파 실버홈 ‘사랑의 집’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해 나갔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이화여대에서의 정년퇴직을 앞둔 2006년, 서울사이버대로부터 총장직 제의가 들어왔고 기꺼이 수락했다. 나는 열정을 가지고 총장직을 수행했다. 유능한 교수진들을 확보하고 학생 수도 많이 늘렸으며 교육과학기술부 심사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일이 내게는 삶의 또 다른 기회이자 새로운 경험이었다. 만약 내가 서울사이버대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5월, 그토록 오랫동안 꿈꾸었던 요양센터를 드디어 개원하게 됐다. 처음 설계했을 때는 호스피스센터를 계획했지만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노인공동생활시설로 바꿨다. 65세 이상의 질병이 있는 노인 아홉 분을 돌보는 요양동과 건강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생활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도 이곳에서 노인들과 함께 생활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직도 무릎이 많이 아프세요?”

요즘 나의 하루는 어둑어둑한 새벽 6시에 요양동의 각 방을 돌며 회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마다 각 방을 돌며 한 분 한 분을 꼭 안아드리고, 두 손을 맞잡고, 대화를 나눈다. 비록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해도 관심을 갖고 반갑게 대하며 알아봐 주면 어르신들은 좋아하신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사람을 돌보는 일이 이젠 싫증나거나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가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어쩌면 사랑으로 사람을 돌보는 기쁨보다 더 큰 행복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성공적인 삶이란 예수님처럼 돌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가 될 것이다.

(김수지 교수는 다음 달 아프리카 남동부의 빈국 말라위로 떠날 예정이다. 현지 간호대학 학장을 맡아 간호 인력 양성에 힘쓰는 한편 말라위의 보건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도 나설 계획이다. 그는 착실히 선교사 교육도 받아 왔다. 김 교수는 최근 자신의 돌봄 인생을 정리한 책 ‘사랑의 돌봄은 기적을 만든다’(비전과 리더십)를 출간했다. 22일 오후 1시부터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저자 사인회가 열린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