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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남호철] 구제역 후폭풍

[데스크시각-남호철] 구제역 후폭풍 기사의 사진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6개 시·도, 52개 시·군·구로 번지면서 서울, 호남, 경남, 제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됐다. 발생 50여일 만에 매몰 대상 가축은 210만 마리를 넘어섰다. 중세시대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연상케 한다. 구제역은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해가 없다지만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주요 먹거리의 하나인 돼지고기 값이 들썩이고 있다. 살처분·매몰 조치에 따라 국내 돼지 사육 규모가 11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면서 국산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소매가격도 설을 앞두고 오름세를 타고 있다. 돼지 숫자 감소로 소매가격 불안도 길어질 수 있어 자칫 돼지고기 파동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유 생산량도 급감하면서 초등학교 등 학교가 개학하는 3월쯤에는 공급부족이 심각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구제역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풍속도까지 바꾸고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사람과 차량 등에 의해 전파될 수 있어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설 연휴 동안 귀향을 자제해 달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이 늘고 있다. 명절 특별방역반에 포함된 공무원들은 차가운 도로에서 설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일부 농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설 준비가 방역장비 설치로 대체되는 등 아예 설 연휴를 잊었다.

설 대목을 기대하던 전국 재래시장들도 울상이다. 경북지역에서만 192개 재래시장 중 47곳이 문을 닫았다. 강원과 경기, 충청 등 구제역이 퍼진 대부분 지역이 마찬가지 상황이다. 구제역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전국 모든 시장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어서 설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가축을 살처분하는 과정에 참여한 현장 인력들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집에 가지 못하고 작업에 매달린 방역요원들에겐 육체적인 피곤함보다도 생매장시키는 동물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소를 키우던 농민들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 보인다. 자식과도 같은 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손놓고 볼 수밖에 없는 축산 농가 주민들의 마음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구제역에 따른 과로사·사고사 등 안타까운 소식도 잇따랐다. 슬픈 워낭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것이다. 겨울축제와 행사가 줄줄이 취소 또는 축소되면서 지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겨울축제를 발판삼아 경기를 끌어올리려던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피해는 막대하다.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임기응변식 살처분에 의존하면서 앞으로 나타날 후유증이 더욱 큰일이다. 살처분된 가축의 피로 지하수나 토양의 오염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도 이 정도인데 날씨가 풀리면 더욱 심각해질 게 뻔하다. 여름 집중호우로 매몰지가 유실이라도 된다면 또 하나의 환경재앙이 초래될 게 자명하다.

초기에 안이한 대응 탓에 백신접종 시기가 늦어지면서 ‘설마가 사람 잡은’ 형국이 됐다. 정부가 연간 20억원 가량의 육류 수출을 위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고집하다 1조5000억원이 넘는 재정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정부는 향후에 발생하는 축산농가의 구제역 피해를 100% 보전해 줘야 하고 대규모 매몰·살처분에 따른 환경 비용, 구제역 방역체계 개선을 위한 비용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계산으로 적어도 수십조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정부가 뒤늦게 백신접종에 나서면서 구제역이 다소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더 이상의 확산과 재발 방지를 위해 위급한 사태가 발생한 뒤에 ‘발등의 불만 끄는’ 임시방편적인 대책보다는 물샐틈없는 방역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남호철 사회2부장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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