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서정우] 새해를 소통으로 시작하자 기사의 사진

“소통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초석…. 말길 열어 신뢰수준 끌어 올려야”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소통이 안 된다고 야단들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남편은 아내와, 선생은 학생과, 사장은 사원과 소통이 안 된다고 야단이다. 사람들은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부재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새해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행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새해를 맞아 청와대 참모들과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국민을 만나 소통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책상에 앉아서 보고만 받지 말고 현장에 나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서 정책에 반영하라고 질책한 것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은 일방적 통행이 아니고 서로 주고받는 쌍방적 통행이다. 소통은 상징적 상호작용을 통한 의미공유의 행위이고, 공유면적의 확장과정이며, 공통성의 수립 과정이다. 그리고 소통은 만남과 대화와 나눔의 과정으로 구성된다.

인간개체는 소통을 통해 자기를 확인하고 자아를 실현한다. 노벨상과 레닌상을 동시에 수상한 아일랜드 정치가 숀 맥브라이드에 의하면 소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능에서 영감으로 인도하는 요소가 된다.

조직은 소통을 통해서 정통성을 확립하고, 조직 결정은 소통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사회는 소통을 통해서 균형 있는 발전을 구현한다. 그러나 소통부재는 소외를 낳고, 소외는 대립을 낳고, 대립은 폭력과 투쟁을 낳게 되는 것이다. 폭력과 투쟁으로부터 해방된 균형발전은 대부분의 경우 소통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통은 독재와 전제를 예방하는 길이며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실현하는 첩경이다. 전쟁과 문명 충돌은 대부분의 경우 무지 오해 불신 편견 고정관념 등의 결과이기 때문에 소통은 평화구현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결국 소통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초석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소통이 안 된다고 야단들인가. 생각만 바꾸면 소통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영어로 휴밀리티(humility)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 휴무스(humus)에서 유래된 말이다. 휴무스는 흙을 의미한다. 흙은 인간이 버린 온갖 오폐물을 수용해서 그것을 썩혀서 거름으로 만들어 식물을 자라도록 돕는 기능을 수행한다. 흙은 결코 뽐내지 않는다. 겸손은 소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둘째, 우리는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 옛 경전에도 신랑과 신부가 사로 존중하면 평화가 저절로 찾아온다고 했다. 소통주체와 소통객체가 서로를 인정하면 소통은 저절로 풀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자기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감정이입이라 부른다. 다르게 말하면 역지사지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자기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는 태도는 소통을 크게 돕는다.

넷째, 우리는 우선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 먼저 말하면 대결이 되고, 먼저 들으면 대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두 개인 것은 한 번 말하고 두 번 들으라는 뜻이 아닐까.

다섯째, 우리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하여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가지지 말고 항상 선의를 가지고 소통해야 한다. 선의는 소통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소통 가운데 가장 중요한 소통은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이다. 율곡 선생은 소통을 ‘나라의 원기’에 비유하면서 “말길의 열리고 닫힘에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렸다”고 주장하고,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한 나라의 발전은 그 나라에 내재한 신뢰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말길, 말, 신뢰 수준은 모두가 다 소통과 연관되는 현상들이다.

서정우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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