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5) 다시 볼 수 없는 소 기사의 사진

‘소’라고 불러보면 눈물이 난다. 무슨 죄가 깊어 이런 꼴을 겪는가. 주삿바늘 앞에서 새끼를 사타구니에 감추고, 죽을 힘 다해 마지막 젖을 물리는 어미 소는 눈물치레로 위령(慰靈)할 수가 없다. 이러고도 우리는 방아살을 넣어 설날 떡국을 끓이고, 초맛살 양지머리 골라먹는 살코기에 입맛을 다신다. 이제 소는 웃지도 하품하지도 않는다.

그림에 ‘뇌경(牢耕)’이라 적혀있다. ‘소 밭갈이’라는 뜻이다. 검둥소 한 마리가 쟁기를 끈다. 뒷발은 버티고 앞발은 내딛는다. 울룩불룩한 등짝에 근골이 당차다. 쟁기에 묶인 두 봇줄이 끊어질 듯 팽팽하다. 소의 안간힘이 너끈히 보인다. 얼마나 용을 쓰는지, 쟁기 보습이 땅속 깊이 들어갔고 갈아엎은 흙밥이 볼록하게 솟았다.

입을 앙다문 농부도 팔뚝과 종아리 다 굵다. 한 손으로 쟁기를 잡아도 비끗하지 않는다. 몸에 푹 익은 솜씨다. 일 잘하는 소라도 매는 맞는다. 오른손에 든 버들 휘추리가 볼기로 막 날아들 참이다. 매도 일찍 맞은 소가 덜 맞는다는 걸 농부는 안다. 옛날 소는 다 이랬다. 맞으면서 일해도 길마가 무겁다고 드러눕는 소는 없었다.

지금 소는 어떤가. 논밭 가는 소는 보기 어렵고 달구지 끄는 소는 찾기 힘들다. 젖을 마시고 살점 발라먹으려고 키운다. 그러니 스무 해 수명 채우고 가는 소가 없다. 수천 년 동안 애지중지 길러오던 소다. 하루 내내 풀만 뜯어먹는 착하고 미련한 소다. 그 소들이 갈아야 할 땅 속으로 제가 들어가고 있다. 밭 갈 때 신던 쇠짚신 한 번 못 신어보고 말이다. 1백여 년 전 화원 양기훈이 그린 소다. 이런 소는 이제 누가 키우나.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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