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권재일 원장 “온 국민이 ‘짜장면’이라고 쓰면, 복수 표준어로 인정해야죠” 기사의 사진

“규범이 언어생활을 옥죄어서는 안 됩니다. 온 국민이 다 ‘짜장면’이라고 하고 있는데 규범은 ‘자장면’이에요. 표준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짜장면’을 예로 들고 있어요. 자장면을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둘 다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면 사람들은 마음 놓고 말을 할 수 있고 (단어들은) 경쟁을 통해 어느 하나가 저절로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1일로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이날 권재일(57·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원장을 서울 방화동 국립국어원에서 만났다. 그는 “내음(냄새)·손주(손자)·허접쓰레기(허섭쓰레기) 등 자주 쓰이지만 비표준어인 단어들을 복수표준어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중이다”라며 “앞으로도 자주 쓰이는 비표준어 단어들에 대해 복수표준어화 작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표준어화 작업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 직속 국어심의회 소위원회는 권 원장이 언급한 단어 외에도 ‘나래’(날개), ‘뜨락’(뜰), ‘떨구다’(떨어뜨리다) 등 흔히 쓰이는 35개 비표준어 단어들을 복수표준어로 삼기로 결정했다. 이 안이 확정되려면 국어심의회 본회의에서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지만, 사실상 확정이나 마찬가지다. 35개 단어 외에 ‘짜장면’을 ‘자장면’과 함께 복수표준어화하는 안도 논의됐으나 보류됐다.

“예전에도 ‘멍게’를 복수표준어로 인정한 적이 있지요. 온 국민과 포장마차가 다 ‘멍게’라고 하는데 표준어는 ‘우렁쉥이’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88년에 ‘멍게’가 표준어로 인정됐지요. ‘쇠고기’와 ‘소고기’도 복수표준어입니다. 표준어 규범이 형법은 아니지만, 그전까지 ‘멍게’라고 말하는 국민들은 모두 규범을 어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언어학자로서 ‘규범이 언어생활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권 원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인터넷 신조어에 대한 의식도 적극적이었다. “물론 신조어를 사전에 등재하거나 표준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생명력이 짧은 것도 많기 때문에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그 용어를 받아들이는지 여부를 유심히 봅니다. 신문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신조어를 쓰기 시작하면 일반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복수표준화 작업 외에도 국립국어원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사업 중 하나가 전문용어의 국어화다. 권 원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34만개의 각계 전문용어를 2012년까지 우리말로 고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각 학계의 전문용어를 쉬운 한자말이나 토박이말로 바꾸는 게 첫 번째 일입니다. 또 여러 용어가 있을 경우 한 가지로 통일하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용어를 다듬은 후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사전에 등재해 표준어화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다듬은 용어가 정착해야 하는데, 아무리 잘 다듬어도 국민이 사용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니까요.”

이를 위해 국립국어원은 2012년까지 17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의학·건축·물리학 등 17개 분야의 전문용어를 한국어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국어 순화 운동을 벌이며 연구 작업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게 권 원장의 설명. 그는 “전문용어를 국어화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말은 소멸되지는 않더라도 필리핀의 타갈로그어처럼 생활 언어로만 쓰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어화된 전문용어는 2013년부터 개방형 사전에 등재된다. 그 후 순화된 전문용어가 살아남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언중(言衆)들의 언어생활에 달린 일이다.

이 외에도 국립국어원은 방언 보존과 한국어 사용 인구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1억명 정도가 한국어를 사용하면 한국어의 기반이 탄탄해지리라 본다”는 권 원장은 “이를 위해서는 2400만명 정도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 필요해 한국어 교사 양성 등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경제·문화적 위상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고. 한편 국립국어원은 20주년을 맞아 종이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과 세종학당 현판 등을 넣은 ‘기억상자(타임캡슐)’를 묻는 행사를 가졌다. 기억상자는 2031년 개봉될 예정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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