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신정환이 귀국했다. 해외 원정도박으로 물의를 빚고 잠적한 지 5개월 만이다. 공항 입국장에 나타난 그는 넙죽 90도 인사부터 했다. 긴장된 표정에서 “혼나겠다”는 각오가 전해졌다. 한데, 사람들의 시선이 꽂힌 건 구부린 허리의 각도가 아니었다. 그의 옷차림이었다. 청바지와 검정 점퍼, 그리고 귀여운 흰색 털모자. 그것들이 눈 밝은 이들에 의해 수입명품이라는 게 밝혀졌다.

인터넷은 그 일로 시끄러웠다. 감초 같은 한 진보논객은 “남이 뭘 입든 왜 기분 나쁘냐”고 마뜩잖아했다. 명품 논란이 사안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상관이 있다. ‘TPO’(때·장소·경우에 맞춰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것)라고 하지 않는가. 국민 정서는 명품이 반성의 옷차림이 아니라고 본 거다. 한국 사회에서 수입명품에 덧씌워진 질시와 부도덕의 이중적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신정환의 귀국 패션 코드는 ‘꽝’이었다.

2004년 ‘위안부 누드 화보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탤런트 이승연씨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러 갈 때 들고 간 수천만원 명품가방이, 2007년 가짜 학위 사건이 불거져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신정아씨가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에 입고 나타난 명품 T셔츠가 논란이 됐던 건 그런 이유다. 반성의 자리에서는 타인들의 반감부터 어루만져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신정환도 공손히 90도 인사를 한 것일 게다. 하지만 낯빛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걸 그는 몰랐다. 패션코드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 사례가 있었음에도 부적절한 명품 패션 논란이 되풀이되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건 ‘명품입기’가 그들 사회에선 일상이자 관행이었던 탓이다. 그런 복장이 몰고 올 파장은 고려사항에 들지도 않았던 것이다. 보통 사람과 연예인 세계의 간극이 몰고 온 해프닝이다. 관행의 간극이 비극을 낳은 경우도 있다. 이달 초 청문회를 거치기도 전에 낙마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대표적 사례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월봉 1억’이 국민정서를 가장 크게 건드렸다. 도시의 4인가족 봉급쟁이의 월 평균소득이 422만원(2009년 기준)이다. 연봉 1억도 샐러리맨에겐 꿈인 세상이다. 그런데 1년이 아니라 한 달에 1억원을 벌었다니….

여론재판에 정 후보자는 억울해했다. 법무법인에서 7개월 일할 때 7억여원을 받은 건 전형적인 전관예우라는 세간의 인식에, 그는 30여년 법조경력을 가졌기에 관행상 정당한 대우였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관행’이었다.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그는 국민정서를 몰랐다.

사전에 입각 후보자 검증작업을 거쳤다는 MB 정부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정부 사람들이 그들만의 관행에 함몰돼 있다는 증거는, 학습효과가 전혀 없는 듯 되풀이되는 청문회 낙마자 양산사태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 다들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스폰서 의혹 등 비슷한 사유였다.

국민정서에 기댄 ‘헛발질’도 있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아들에 대한 서울대 로스쿨 특혜입학 의혹이다. 그 대학의 진보교수가 정면반박하면서 문제를 제기한 민주당 꼴이 우습게 됐지만, 잠시라도 네티즌 사이에서 반응이 있었던 건 사회지도층 관행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장관 딸의 외교통상부 특채 논란이 불과 수개월 전 아니었던가.

신정환의 국민정서 무감각은 패션코드가 예의에서 좀 벗어난 정도에서 파장이 그친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 반열에 올랐던 사회지도층의 무감각은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양분돼 있고 그들만의 관행에 젖어 보통 사람들의 삶을 몰라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 실상에 대한 무지(無知)는 왜곡된 국가비전과 잘못된 정책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손영옥 국제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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