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6) 눈 오면 생각나는 사람 기사의 사진

멜대가 휠 정도로 나뭇짐을 진 텁수룩한 사내가 비탈길을 내려온다. 먼 산과 나뭇가지가 간밤에 내린 폭설로 하얗다. 눈이 그쳐도 산바람은 차갑다. 사내는 실눈을 뜨고 입을 꾹 다물었다. 짚신에 감발을 친 아랫도리가 엉거주춤한 기마자세다. 털벙거지 눌러쓰고 시린 손을 소매에 감춘 채 미끄러질 세라, 내딛는 발이 조심스럽다.

눈 펄펄 내리면 아이와 강아지가 신난다. 그렇다고 모두 눈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늙은 시인은 눈 오는 날 방을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눈처럼 하얀 수염이 부끄러워서란다. 이건 좀 심한 낭만적 엄살이다. 대신 당나라 시인 나은은 헐벗은 사람을 걱정한다. ‘눈 오자 풍년 들 징조라 하네/ 풍년 들면 다들 좋아지는가/ 장안에 가난한 사람 많은데/ 좋다 해도 말 지나치면 안 되지’

눈보라가 몰아치면 굶주린 사람은 살기 힘들다. 아무리 하얘도 눈이 쌀밥이 되겠는가. 먼 길 떠난 자식도 마찬가지다. 눈발 날리면 고향 추위가 걱정된다. 조선 문인 이안눌은 집에 보낼 편지에 고된 타향살이를 적다가 백발의 부모가 생각나 주춤한다. 그의 시 마지막 구절은 콧등이 시큰해지는 효심을 보인다. ‘깊은 산 쌓인 눈, 천 길이나 되는데/ 올 겨울은 봄보다 따뜻하다고 말씀 드리네’

공재 윤두서의 그림이다. 그는 소박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본 화가다. 간략한 필선과 맞춤한 구도에 나무꾼의 힘겨운 일과가 잘 나타나있다. 설날과 입춘이 코앞이다. 저 사내도 땔나무를 팔아 설날에 복조리를 사고 문간에 춘방(春榜)을 붙였으리라. 나무꾼아, 견디자구나, 겨울눈 덧정 없어도 봄눈은 녹게 마련이니.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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