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연말정산, 30년을 해도 어려운 숙제 기사의 사진

“혜택받으려면 세금내는 사람이 잘 읽어보고 알아서 작성하라는 자세가 아닌지”

연말정산용 소득공제신고서 작성은 봉급생활자들이 해마다 하는 숙제지만 늘 어렵고 헷갈린다. 자칫 실수로 잘못 작성해 부당공제를 받았다가는 가산세까지 물어야 하고 귀찮다고 받아야 할 공제 항목을 누락하면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세금을 포기하는 셈이다. 그러니 빡빡한 공제신고서식과 증빙서류를 보며 스트레스부터 받는 게 연말정산이다.

연말정산은 근로자들의 세금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인 만큼 품이 좀 든다고 불만부터 터뜨릴 일은 아니다. 2006년부터는 국세청에서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해 납세자들이 일일이 소득공제 영수증을 챙겨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고 있으며 신고서 작성 시기도 연말에서 이듬해 1월로 늦춰 신고 누락분을 줄이도록 했다. 하지만 신고서를 작성하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아직 불편한 사항이 적지 않다. 정부 당국이 국민 편의를 고려해 복잡한 세제를 정비하고 서식을 개선하면 신고서 작성이 훨씬 쉬워질 터인데 여전히 납세자를 ‘을’로 보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우선 신고서 1쪽부터 보면 몇 글자 들어가기도 어려운 좁은 곳에 주민등록번호 13자를 적어야 한다. 또 각종 소득공제 항목의 금액을 쓰는 난도 너무 좁아 다른 칸으로 숫자가 넘어가기 일쑤다. 관련 법규가 많다 보니 의료비 지급명세서나 신용카드 등 공제 신청서, 연금저축 등 소득공제 명세서, 기부금 명세서 등은 별지 서식으로 작성해야 한다. 여기에다 간소화 서비스 서류는 또 따로 제출해야 하므로 여러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서식마다 번거롭게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써야 할 뿐더러 서류 작성을 도와줄 설명이 부족하다. 의료비 지급 명세서의 주소가 납세자 주소인지 사업장 소재지를 요구하는 건지 혼란을 준다. 공제 대상 기부금은 무슨 종류가 그리 많은지 열거한 항목만 보아도 눈이 어지럽다. 얼마나 연말정산이 복잡한지 시중에는 이를 안내하는 책자까지 나와 있다. 이러다 보니 일상 업무는 미뤄둔 채 마음먹고 날을 잡아 연말정산에 매달려야 서류 작성을 마칠 수 있다.

공제 기준도 인색하다. 의료비는 연봉의 3%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만 공제가 가능해 실질 혜택이 미미하고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액도 종전 5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줄었다. 그것도 신용카드 사용액이 총 급여의 25%를 넘어야 공제 대상이 된다. 전년보다 신용카드 공제 대상 기준을 5% 포인트 높여 직장인들의 혜택이 훨씬 줄게 됐다. 부양가족 공제에서 소득금액이 연 100만원 이상이면 기본공제 대상에서 제외한 조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항목으로 꼽힌다. 연소득 3000만원 이하 근로자를 위한 월세 소득공제는 늘어난 집주인의 세금 부담이 월세로 전가되기 십상이어서 걱정부터 든다.

1974년 연말정산 제도 도입 이후 관련 법규가 여러 차례 바뀌고 공제 항목에 추가된 내용이 많아 서류 작성이 더욱 번거로워진 게 사실이다. 또 공제 기준이 너무 까다롭거나 현실에 맞지 않아 납세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세분화된 공제 항목을 세 부담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단순하게 정비하고 공제 기준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세무 당국도 항목을 손질하고 간소화 서비스를 늘리는 방향으로 노력해 왔지만 납세자들의 눈높이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세제를 정비, 개편하는 일은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은 가능한 수순을 밟아 시급히 고쳐야 한다. 여야가 민생을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계에 도움이 되는 일부터 챙겨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 아울러 세무 당국은 신고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옹색한 현행 서식을 넉넉한 칸과 상세한 설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개선해주기 바란다. 세로로 좁게 인쇄된 서식을 가로로 바꾸기만 해도 신고서 작성이 훨씬 쉬워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소득공제 연말정산 신고를 납세자를 위한 시혜로 착각해 잘 읽어보고 알아서 작성하라는 식의 잘못된 자세는 빨리 고쳐야 한다.

김성기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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